은행 대출을 갚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돼 은행권 연체율 상승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지난해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오른 데다 코로나19 관련 금융 지원이 중단된 데 따른 것으로 당분간 고금리·고물가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은행권의 대출 부실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1월 신규 연체율 평균은 0.09%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0.07%) 대비 0.02%포인트 늘었으며 1년 전인 지난해 1월(0.04%)에 비해서는 2배 이상 높아졌다. 신규 연체율은 당월 신규 연체 발생액을 전월 말 기준 대출잔액으로 나눈 것으로 신규 대출 부실액이 얼마나 더 생겼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연체율은 가계와 기업 구분 없이 모두 늘었다. 4대 은행의 가계 신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6월까지 0.04% 수준을 유지했지만 9월 0.05%로 올랐고 이어 12월과 올해 1월에는 0.07%까지 상승했다. 기업 신규 연체율 평균도 지난해 9월 0.06%, 12월 0.08%에 이어 지난달에는 0.10%까지 높아졌다. 지난달 새로 발생한 연체액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추산은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4개 은행의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총잔액이 1139조 원가량이었던 만큼 지난달 신규 연체율 평균(0.09%)을 고려하면 1조 원 이상 신규 연체가 발생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대출 연체 증가 조짐은 시중은행뿐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 등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인터넷전문은행 3곳의 1개월 이상 연체 대출 잔액은 2915억 원이었다. 지난해 1분기 말(1062억원)보다 3배 가까이 급증한 액수다. 연체율도 오르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연체율은 지난해 1분기 말 0.26%에서 4분기 0.49%로 0.23%포인트 상승했고 케이뱅크도 같은 기간 0.48%에서 0.67%로 0.19%포인트 높아졌다.
연체율이 최근 급격히 오른 것은 지난해 지속적으로 상승했던 금리가 본격적으로 가계와 기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예금은행의 잔액 기준 대출금리는 기업대출 3.07%, 가계대출 3.01%였지만 지난해 12월에는 5.13%와 4.66%로 각각 2.06%포인트, 1.65%포인트 상승했다. 3억 원을 빌렸을 경우 기존 대출의 연간 이자만 약 500만~600만 원 늘어났다는 의미다. 아울러 코로나19 관련 정부와 은행권의 금융 지원이 종료되고 소비 감소 등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앞으로다. 은행의 대출 연체율을 끌어올렸던 고금리와 경기 침체 등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은이 23일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했지만 오히려 은행 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은행채금리는 최근 상승세로 돌아섰다. 향후 금리가 오를 것으로 시장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초만 해도 3.5% 정도였던 1년 만기 은행채(한국자산평가 기준, 무보증 AAA등급)금리는 24일 기준 3.826%까지 올랐으며 5년 만기 은행채 역시 3.9%대에서 4.2%대까지 상승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당국과 금융권이 보다 선제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다만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체율이 오르는 것은 추세로 볼 때 사실”이라면서도 “아직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은행의 건전성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은 국내 은행의 건전성 관리는 매우 뛰어난 편”이라며 “추가로 충당금을 쌓는 등 다양한 대응 방안이 마련돼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