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 재개로 업황 회복을 기대하던 외식 자영업자들이 공포 수준의 물가 인상과 이에 따른 소비자와의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원부자재 가격에 이어 공공요금까지 뛰어 부담이 커진 가운데 비용 절감을 위한 메뉴 가격 조정과 운영 방식 변경으로 소비자와 마찰을 빚는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섭게 치솟은 물가에 사는 쪽도, 파는 쪽도 숫자 하나에 예민해진 상황이다. 밑반찬 리필과 커피 한 잔을 두고 ‘야박한 사장님’과 ‘야속한 고객님’이 날을 세우는 현실은 고물가에 짓눌린 서민 경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재료비·난방비 다 올라…가격에 시름=지난해 급등한 외식 물가는 올해 들어 또다시 뜀박질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미 원부자재값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에서 올해는 가스비와 전기료 등 연료비가 복병으로 떠올랐다. 26일 한국소비자원 가격 정보 종합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냉면과 삼겹살·삼계탕의 평균 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삼계탕 한 그릇 가격은 1만 6000원으로 1년 전의 1만 4308원보다 약 12% 올랐다. 냉면 1인분 가격은 지난해 4월 1만 원을 돌파한 뒤 지속적으로 상승해 지난달 1만 692원을 찍었다. 대표 외식 메뉴인 삼겹살값도 천정부지다. 지난달 식당에서 1인분인 삼겹살 200g의 가격은 1만 9031원으로 1년 전의 1만 6983원보다 12%가량 올랐다. 김밥과 비빔밥의 평균 가격도 각각 3100원, 1만 원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물가 인상을 부추겼던 곡물 가격은 다소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가스비와 전기료 인상분이 본격적으로 메뉴 가격에 반영되며 외식 물가가 다시 들썩이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실제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겨울 자영업자들의 전기요금은 1년 전과 비교해 ㎾당 30%(32.4원) 상승했다. 도시가스요금은 지난해부터 네 차례에 걸쳐 37~40% 인상됐다. 반면 지난해 1분기 부셸(27.2kg)당 15.52달러까지 치솟았던 대두 가격은 같은 해 4분기 14.33달러로 내렸다. 같은 기간 밀가루의 원료인 원맥 가격도 8.89달러에서 8.19달러로 싸졌다.
난방비 및 전기료까지 오르자 축산 농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치솟은 사료 가격에 지난달 닭고기와 돼지고기의 소비자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8.5%, 1.9% 상승한 가운데 일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기 보온등과 열풍기 비용 부담 역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마와 한파 등 날씨에 멍든 채소 가격도 외식 물가 인상을 견인하고 있다. 이달 23일 상추(100g) 가격은 1207원으로 1년 전의 902원보다 약 34% 뛰었다. 같은 기간 청양고추(100g) 가격도 1192원에서 2699원으로 126%나 상승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A 식품 업체에 따르면 국과 탕류 간편식을 주로 만드는 공장의 지난달 가스요금은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했다. A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대비 하반기 산업용 가스요금이 40% 올랐는데 올해 더 오르고 있어 가격 인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껑충 뛴 외식비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기자 자영업자들이 체감하는 외식 경기는 그야말로 ‘공포’ 수준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 1분기 외식 산업 경기전망지수는 85.76으로 전 분기 대비 9.22포인트 급락했다. 이는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모임 금지를 골자로 하는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행됐던 2021년 3분기(86.62)보다 낮은 수치다. 외식 산업 경기전망지수는 100을 넘으면 경기 호전을 전망하는 업체가 더 많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물가에 모두 예민…고객과 씨름=이 같은 전망 속에 외식 업계는 저마다 긴축 방안을 짜내며 ‘인플레이션 한파’에 대응하고 있다. 서울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손 모 씨는 올해부터 매장 입구와 계산대·메뉴판 주변에 ‘1인 1음료’라는 안내문을 써 붙였다. 2~3명이 와서 음료 한 잔, 디저트 하나만 주문하고는 몇 시간을 자리만 차지하다 가는 일이 많아져서다. 손 씨는 “주말에 네 식구가 와서는 엄마·아빠가 음료 하나씩 시켜놓고 반나절을 각자 스마트폰 보며 놀다 가더라”며 “저 가게 별로라는 소문이 돌까 걱정도 되지만 이런 식이라면 매장 전기료도 감당 못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손 씨 카페뿐만이 아니다. 인건비 때문에 밑반찬을 고객이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셀프 바’ 형식으로 운영하던 한 백반집은 최근 오이·애호박·고추와 각종 나물류 채소 가격이 크게 뛰고 밑반찬 폐기율이 늘자 영업 전 미리 테이블마다 밑반찬을 세팅해두는 것으로 운영 방식을 바꿨다. 오랜 시간 1000원이 ‘박제 가격’이었던 공깃밥을 1500원으로 올리는 음식점도 많아졌다. 점심·저녁 등 손님이 많이 몰리는 시간에 1인 손님을 받지 않고 테이블 회전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예약을 했어도 동행자가 함께 와야만 매장에 입장하도록 하는 곳들도 있다.
이 같은 운영 방식 변경은 고객과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영업자들이 즐겨 찾는 한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에는 국밥 한 그릇을 시키고 부추나 청양고추를 계속 리필해달라고 하는 손님, 카페에서 음료 한 잔을 시켜놓고 장시간 전원 콘센트 좌석을 차지하고 공부하는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 손님이 몰릴 시간에 혼자 와서 4인석을 차지하고 ‘혼밥’하는 손님 등에 대한 응대 방법을 묻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이 중에서는 “반찬 리필을 한 번에 몇 접시씩 요구해 정중하게 거절했더니 정색하고 영수증을 챙겨 나가더라”며 “(영수증 인증으로) 안 좋은 리뷰를 쓸까 걱정된다”는 사연부터 “1인 1메뉴 요청에 (같이 온) 애가 얼마나 먹는다고 그러느냐”고 거부하는 고객과의 갈등 경험담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버티고 버티다 가게를 접는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전국 음식점업과 도소매업 등의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39.8%가 3년 내 폐업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영업 실적 지속 악화(26.4%)가 가장 많았고 임차료·인건비·공공요금(12.1%)과 원재료비 원가 상승(11.1%) 등 비용과 관련한 응답도 23%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