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간호사 ‘주4일제’ 파격 실험…“3교대지만 해보니 되더라"

세브란스병원, 의료계 최초 시범사업 착수
이직률 높은 병원 간호사 대안으로 떠올라
삼성서울병원, 7개 유연근무제 선제 도입

“3교대 간호사는 주4일 근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반신반의하며 신청했는데 당장 주위 반응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얼굴이 환해졌대요. 환자, 보호자들로부터 '친절하다'는 얘기도 부쩍 많이 듣는 것 같아요. ”


세브란스병원 17년차 간호사 이순애씨는 올 1월부터 주 4일만 근무하고 있다. 이 씨가 근무하는 171병동은 간담췌외과 수술을 받은 후 입원하는 중환자가 많다. 일반 환자가 체온·혈압을 하루 3번 정도 체크한다면 중환자는 1~2시간마다 해야 한다. 부서 인원의 절반가량이 1~2년차라 업무 강도도 센 편이다. 근무가 끝나면 녹초가 되는데 낮밤이 바뀌고 불규칙한 3교대 근무 특성상 컨디션이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채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이씨는 “이전까지는 근무가 없는 날도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했다”며 “주4일제로 바뀌며 휴일이 몇개 늘어난 것뿐인 데도 몸이 가뿐하고 업무 몰입도가 높아졌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지고 더욱 꼼꼼히 상태를 살피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간호사들이 병동에서 근무 교대를 위해 인수인계 중이다.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전 세계적으로 ‘주4일제’ 논의가 빠르게 확산하는 가운데 의료 현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8월 노사간 합의를 통해 의료계 최초로 주4일제 도입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강남과 신촌 3개 병동 간호사 30명이 1년간 참여한다. 시범운영안 합의후 참여병동 및 참여자 선정, 추가 인력 투입 등의 준비를 거쳐 본격적으로 가동한지 두달이 되어간다. 주4일제가 간호사들의 노동시간과 강도, 직무 및 기관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연구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김은희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 사무처장은 “시행 초기임에도 신체적,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긴 부서원들이 업무에 앞장서며 부서 내에 협력적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얘기들이 들려온다”며 “병원 근무환경과 국민건강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주4일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4시간 바쁘게 돌아가는 대형병원까지 주4일제 카드를 커내든 배경은 고질적인 간호사 인력난과 맞닿아 있다. 전국의 간호사 면허 취득자는 꾸준히 증가하면서 2021년 기준 24만 307명이 됐다. 하지만 열악한 업무환경으로 인해 퇴직자가 속출해 공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간호사 이직률은 15.2%로 다른 산업군 대비 3배 이상 높았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밀레니얼세대 비중이 높아지면서 병원 간호사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추세다.


2021년 병원간호사회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신규간호사 평균 이직률은 47.7%에 달했다. 간호사들의 퇴직 원인 1순위로는 3교대 근무가 꼽힌다. 3교대 근무는 생체리듬이 깨어지고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게 한다. 육아 등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보니 삶의 질 저하, 직무 부적응을 호소하다 퇴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이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2020년 7월부터 전통적 3교대 근무 외에 △'데이-이브닝-나이트' 중 1가지 듀티 고정 근무 △2가지 듀티 번갈아 근무 △12시간씩 2교대 등 7개 근무제를 도입했다. 전통적 3교대 근무까지 총 8가지 유형 중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선택하는 방식이다.


시행 6개월만에 기존 3교대 근무자 비중은 1%대로 줄어든 반면 야간이 없는 고정 근무는 약 30%, 야간 전담이나 12시간 2교대만 하는 비율은 50%로 늘었다. 김효진 삼성서울병원 간호행정팀 파트장은 “근무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자존감 상승과 예측 가능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유연구무제 도입 후 근무 만족도가 2배 가까이 높아지고 이직률도 낮아졌다”고 소개했다.



삼성서울병원 간호사가 병실에서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물을 확인 중이다.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해외에서는 더욱 파격적인 실험도 시도된 바 있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한 노인 요양병원은 2015년 2월~2016년 12월까지 임금 삭감 없이 간호사들의 근무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줄였다. 하루 8시간 근무했을 때보다 병가와 결근이 4.7% 감소했고 의료 서비스 질이 향상되어 환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관건은 추가 인력 고용에 따른 비용 증가다. 직장인들은 ‘임금을 줄이는 형태의 주 4일제’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2021년 한국리서치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주 4일제 '찬성(51%)'이 반대(41%)보다 높았지만 ‘임금 삭감을 동반한 주 4일제’에 대해 묻자 ‘반대(64%)’가 ‘찬성(29%)’보다 높아졌다.


예테보리의 요양병원도 이익보다 인건비 증가 비용이 높아 6시간 근무가 정착되진 못한 것으로 정해진다. 세브란스병원은 당초 주4일제로 임금 20% 감소가 예상됐는데 노사간 협의를 통해 시범사업 기간동안 병원 측 보조로 참여자의 임금을 10%만 줄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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