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속 캐디복을 입은 박세리는 나무 뒤에 숨어 있다 고개를 빼꼼하게 내민 뒤 웃는 얼굴로 “세리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엔딩 코멘트를 날린다. ‘꽃이 피었다’는 그의 말처럼 박세리는 은퇴 후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전공인 골프가 아니라 ‘예능’을 통해서다.
20대 미만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박세리는 ‘골프 선수’가 아니라 ‘리치 언니’로 통한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궐 같은 집을 공개하고 음식을 할 때는 상상을 초월한 양으로 보는 사람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그런 박세리의 모습은 이질감을 주는 게 아니라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비친다. 현역 시절에는 항상 비장한 얼굴이었지만 방송에서는 털털한 웃음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간다. 지난해 11월 개설한 유튜브 채널 세리TV는 3개월 만에 약 15만 명의 구독자를 끌어 모았다. 박세리가 일일 캐디로 변신해 일반 골퍼를 깜짝 놀래주는 영상은 공개 한 달 만에 조회수 396만을 찍었다.
하지만 박세리는 여전히 골프에 진심이다. 최근 만난 박세리는 은퇴 후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 티잉 구역에 올라서면 승부욕이 끓어오른다”고 했다. 자신이 받은 사랑 이상으로 베풀고 싶다는 박세리는 후배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골프를 할 수 있는 아카데미를 만든다는 꿈이 있다. 몇 군데 부지를 둘러봤다고도 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다가 한 순간 가장 낮은 곳으로도 떨어져 봤던 그는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슬럼프를 겪은 이유와 극복 과정 등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털어놨다.
-요즘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활약이 대단하다.
“그동안 운동만 하다가 안 해본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바쁘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배우고 새로운 길을 알아가는 거라서 즐겁다.”
-예능 대세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한 것 같은데.
“재밌다. 특히 ‘안 싸우면 다행이야’ 같은 프로그램은 운동선수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서로 통하는 구석도 있고 자연 속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내가 힐링을 받고 오는 편이다.”
-선수 생활 때는 주로 비장한 모습이었는데 화면에서는 항상 웃는 모습이다.
“밝게 웃는 게 내 본모습이다. 선수 시절에는 대회에 집중해야 하고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런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저와 친한 지인들은 너무 잘 안다. 우리 가족들은 내가 방에서 TV 보면서 웃고 있으면 ‘쟤는 왜 혼자 맨날 저러고 웃고 있냐’고 했을 정도다.”
“털털하게 웃는 게 내 진짜 모습…인생 2막 행복”
-유튜브 채널에서 가끔 ‘세리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엔딩 코멘트를 한다. 진짜 인생 2막이 활짝 핀 것 같다.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 아무래도 인생 2막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은퇴 후 또 다른 삶을 살면서 좋은 인연들을 만들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즐겁고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밝게 살아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운동 선수였을 때의 박세리는 굉장히 거리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골프가 본업이긴 하지만 팬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그런 재밌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려고 한다.”
-먹는 거에 진심이면서 요리도 굉장히 잘 하더라. 언제 배운 건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왜냐면 한국은 배달업이 잘 돼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게 어렵지 않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방법은 딱 한 가지였다. 마트에서 재료 사다가 이것저것 레시피 보면서 따라하다 보니 대충 끼니 굶지 않을 정도의 요리 실력은 익혔다.”
-과거에는 ‘골프 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고 했는데 지금은 모든 걸 잘 하는 만능이 된 듯하다.
“골프는 오롯이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운동이다. 구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빨래부터 짐까지 뭐 하나 누구한테 맡길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스스로 다 하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배우게 됐다. 성격도 급해서 남한테 시키면 답답한 것도 있어서 내가 먼저 빨리빨리 하곤 한다.”
"내겐 성공해야 할 이유 있었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에는 어떤 마음으로 골프를 했나.
“꼭 성공 해야겠다 이 마음밖에 없다. 단순했다. 성공해야 할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아빠 사업이 잘 안 되면서 부모님이 남들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모습을 봤다. 그런 게 당시의 내겐 아픔이었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진짜 독하게 했다. 감사하게도, 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
-박세리 골프 인생에서 하이라이트 장면 3개를 꼽는다면.
“첫 번째는 1992년 중학교 3학년 때 프로 무대에서 우승했을 때다. 원재숙 프로님과 연장전 가서 이겼는데 나의 첫 연장전이자 프로 대회 첫 우승이었다. 그 우승부터 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다들 얘기하는 1998년 US 여자오픈이다. 하지만 그해 먼저 우승한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도 잊을 수 없다. US 여자오픈에 묻혀서 그렇지 첫 번째 LPGA 투어 우승을 메이저 대회에서 거뒀다. 그 대회 우승으로 미국 무대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미국에서 US 여자오픈을 마지막으로 뛴 뒤 한국에 들어와서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은퇴를 한 장면이다.”
-박세리를 만든 3명을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이 첫째다. 모두가 나를 위해 희생했다. 그 다음은 삼성을 비롯한 후원사들이다. 지금이야 스폰서들이 많지만 1990년대에 골프 선수를 후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삼성에서 골프 선수를 후원하고 계약 체결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세 번째는 꾸준하게 저를 믿고 아껴주신 팬들이다.”
박세리를 키운 아버지 박준철씨와 어머니 김정숙씨의 헌신적인 스토리는 골프계에서 유명하다. 수많은 ‘골프 대디’들이 박세리 부모의 골프 교육 방법 등을 참고하며 ‘세리 키즈’를 키웠다. 삼성과 박세리의 만남은 1993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맞물려 있다. 당시 세계화를 외치던 삼성이 글로벌 스타를 물색하다 박세리를 낙점한 점이다. 삼성은 박세리와의 계약 직후 ‘박세리 전담팀’을 꾸린 뒤 LPGA 투어 진출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8년 LPGA 투어 데뷔한 박세리는 그 유명한 ‘맨발 샷’을 앞세운 US 여자오픈 우승을 비롯해 그 해에만 4승을 거두며 세계 무대에도 우뚝 섰다.
성공 신화를 이어가던 박세리는 그러나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약 2년 동안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다들 ‘박세리는 끝났다’고 했다. 박세리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지만 박세리는 기어코 일어나 ‘전설’이 됐다.
“슬럼프가 나를 성숙시켰고, 그 과정 속에서 굉장히 많은 걸 얻었다”
-슬럼프는 어떻게 찾아왔나.
“2004년 미켈롭 울트라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명예의 전당 입회 포인트를 모두 채운 뒤 딱 일주일 만에 찾아왔다. 진짜 너무 갑작스러웠다. 심지어 혹시 나한테도 슬럼프가 올 수 있다는 생각에 그거에 대비하면서까지 연습을 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관리를 했는데 정말 느닷없었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다 슬럼프라고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솔직히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주위에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절대 괜찮게 안 들렸다. 그냥 혼자 내버려뒀으면 했다.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의욕도 없어지고 온통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슬럼프를 벗어난 계기는.
“우연히 지인과 낚시를 가게 됐다. 내가 왜 거기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 뭔가 번쩍 하더라. 내가 지금까지 뭘 하면서 달려왔지 되돌아봤는데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참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내가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누구보다도 강하고, 누구보다도 잘하고, 누구보다도 자신감이 넘친다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뒤돌아보니 난 오로지 운동만 하고 바보처럼 살아왔던 거였다.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바닥까지 내려왔으니 이제 올라가는 것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떻게 올라갈까 고민했다. 다들 초심, 초심 하는데 그게 굉장히 어려웠다. 다 내려놓는다는 게 쉬울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난 다 내려놓은 것 같은데 사실은 욕심이 있었고, 그 욕심 때문에 또 좌절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의 느낌 등 아주 작은 희망을 보고, 작게나마 나한테 칭찬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차츰 변화하고 예전의 자신감도 회복할 수 있었다.”
-슬럼프 징조는 없었나.
“미리 신호가 왔는데 그것조차 계속 무시를 했던 거다. 스스로에게 나만 힘든 거 아니고 나만 아픈 거 아니고 나만 열심히 하는 거 아니라고 했다. 이게 너무 습관처럼, 버릇처럼 살다 보니까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게 결국엔 나한테 독이 됐던 거다. 슬럼프를 겪고 나니 알겠더라.”
-슬럼프를 통해 얻은 건 뭔가.
“슬럼프는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나한테 가장 보람됐고 나를 굉장히 성장시키고 성숙시켰다. 그 과정 속에서 굉장히 많은 걸 얻었다. 그 후 많은 게 변했다.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할 때는 솔직히 고민이나 걱정 있다. 하지만 기대감과 자신감이 더 앞선다. 그러다 보니 뭐든지 좋게 받아들인다. 결국 슬럼프가 새로운 시작의 원동력이 됐다.”
-슬럼프를 현명하게 극복할 방법은 없나.
“진짜 힘들다. 그 순간을 빨리 헤쳐 나가고 극복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걸 쏟아 붓는다. 근데 그럴수록 더 깊게 빠진다. 그냥 잠시 물러서 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그게 3개월이 될지, 5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꼭 마지막은 아니라는 거다. 3개월의 물러남이 3년 연장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오로지 자신을 힐링하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 근데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다. 마지막이라는 것도 꼭 길의 끝은 아니다. 다시 돌아서 시작하는 지점이다.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지 등을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자신을 좀 더 성숙하게 만들 그런 시간을 갖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는 골프를 즐기게 됐나.
“여전히 쉽지 않다. 다른 스포츠 선수들은 은퇴하면 골프를 하는데 내게 골프는 여전히 직업으로 남아 있다. 아직까지는 취미 수준으로 내려놓을 수 없다. 연습을 안 했으니 당연히 어떻게 칠지 뻔히 알지만 막상 나가면 그게 용납이 안 된다. 그게 너무 스트레스니까 라운드 나가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박세리는 “그래도 골프처럼 재밌는 운동은 없다”고 했다. “부모님 등 가족과 즐길 때가 가장 편하고 행복하다”는 그는 “근데 안 맞으면 ‘아이 씨’ 하면서 짜증을 너무 낸다. 이 어려운 걸 내가 어떻게 했나 싶다. 이제 봤더니 골프는 나랑은 체질이 안 맞는 운동이었나 싶을 정도다”고 했다. 박세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은 지금도 가끔 대회에 출전한다. 우승을 할 때의 그 짜릿함이 혹시 그립지는 않을까. 박세리는 “나는 은퇴 전에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모든 걸 쏟아 붓고 나왔다. 그립지 않다. 다시 채를 잡고 선수로 나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여유로움 속에서 베풀 수 있는 ‘리치 언니’가 됐으면 한다”
-‘리치 언니’로 불린다. 앞으로 조금 더 ‘리치’해지고 싶은 건 뭐가 있나.
“여유를 좀 더 갖고 싶다. 그 여유로움 속에서 베풀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운동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 나도 이제 꾸준히 계속 베풀고 싶다. 그 중 하나가 후배들을 위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거다. 제대로 만들어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유망주들이 계속 나와 줬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 여러 여건을 고려했을 때 용인 쪽을 염두에 두고 있다. 몇 군데 부지를 둘러봤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도 키우다 보니 동물 보호 쪽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 내가 꿈꾼 그런 걸 하려고 열심히 일하는 거다.”
-사업가로서 박세리는 어떤가.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되게 많은 사람이었다. 항상 무엇을 선택하든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일도 마찬가지다. 부지런히 일을 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질 거고 역량도 커질 거라 믿는다.”
-회사 이름 ‘바즈’의 의미는 뭔가.
“바즈는 고대 페르시아어 바자르(BAZZAR)에서 따온 말로, ‘한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큰 상권을 형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골프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 영역의 콘텐츠를 창조하고 스포츠를 통한 즐거운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방송을 잘 하기 위해 특별하게 노력하는 게 있나.
“난 전문 방송인이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한다. 성격상 불편한 걸 되게 싫어한다. 대본을 주더라도 한 번 훑어만 보고 대본 대로 안 한다. 성격이 직설적이어서 마음에 내키지 않는 건 안 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지금의 방송 트렌드와 잘 맞아서 좋게 봐주는 것 같다. 운동선수들이 대부분 그렇다.”
-강연은 자주 나가나.
“기업 등 여러 곳에 나간다. 엄마들만 대상으로 하는 강의도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자녀 교육에 대해 말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이가 있지는 않지만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교육시켰는지에 대해 알려드린다. 부모가 아이의 길을 열어주는 건 맞지만 부모의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그 길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절대 욕심 내지 말라고 한다. 부모의 삶 속에 자녀가 있는 건 맞지만 자녀의 꿈을 부모의 욕심이 따라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못 쳐야 더 크게 성장한다”
-지난해 한국 선수들이 LPGA 투어에서 부진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어떻게 보나.
“내가 그동안 꾸준히 말했던 거지만 우승 한 번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유독 한국 선수들이 그 어려운 걸 너무 잘해 온 거다. 어느 순간 우승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승수가 적으면 부진하다고 하는데 절대 그러면 안 된다. 대한민국 골프 역사를 봐도 굉장히 짧다. 환경도 열악하다. 근데 한국 선수들이 너무 잘하고 있는 거다. 한국 골프의 영향력도 커졌다. 그걸 먼저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선수들이 자부심 갖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왜 꼭 하나만 먹어야 하나.”
-그럼 다섯 개라면.
“그것도 똑같다. 왜 꼭 다섯 개만 먹어야 하나. 죽기 전인데 먹을 수 있는 거 최대한 다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 다 못 먹어도 먹고 싶은 건 다 깔아놔야 한다.”
-홈페이지에 ‘나쁜 경험은 없다’는 문구를 써놨던데.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경험이 있어야 성숙하고 성장하는 거다. 경험이 없으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헤쳐 나갈지 모른다. 초등학생들 보면 대회 후에 못 쳤다고 울기도 하고 속상해 한다. 그러면 ‘괜찮아. 더 못 쳐도 돼. 못 치면 못 칠수록 더 좋은 거야’라고 말해 준다. 왜냐면 못 쳐야 나중에 어떻게 해야 될지 알게 된다. 이렇게도 치고, 저렇게도 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누가 똑바로 치나. 못 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헤쳐 나올지 생각하면서 성장한다. 매번 똑바로 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실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만회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세상에 나쁜 경험은 없다고 항상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