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은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기는 하지만 아직은 직접 투자하기 두려워 합니다. 그들은 한국 자본시장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봐요"
법무법인 원의 이영주 변호사(44·변호사시험1회)는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원 사무실에서 서울경제 시그널과 한 인터뷰에서 “중동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한국기업의 기술력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투자 혹한기를 건너고 있는 국내 투자업계에서 중동 자본은 거래를 움직이는 핵심 중에 하나다. SM엔터테인먼트를 노리는 카카오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두바이투자청(PIF)의 자금으로 공매매수를 준비 중이고, 적자가 커지는 SK온은 카타르투자청(QIA)이 주요투자자로 나서며 한 숨을 돌렸다.
그러나 ‘왕가의 자금’이라는 벽 때문에 국내에서 중동 국부펀드의 실체를 잘 아는 이는 드물다. 이영주 변호사는 국내에서 드물게 두바이투자청(ICD)가 쌍용건설을 인수하고 매각하는 전 과정을 도왔다. 두바이투자청은 중동 국부펀드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했다가 되판 투자자다.
이영주 변호사는 두바이투자청이 지난해 쌍용건설 지분 90%를 글로벌세아그룹에 매각할 때 법률자문을 맡았다. 그는 2015년 두바이투자청이 쌍용건설을 인수할 때도 자문을 맡아 인연을 맺은 뒤, 경영 과정에서 필요한 법률적 조언을 해왔다.
대형 법무법인을 제치고 그가 중동 큰 손의 자문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외국변호사로서 해외 거래에 강하고 KT·네이버 등 일반기업에서 일했던 경험 덕이 크다. 다만 두바이투자청 수석고문이자 국내 자산운용사 관계자와 법무법인 원의 주요 파트너가 오랜 신뢰관계를 쌓고 있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영주 변호사는 “추천을 받은 후 두바이투자청의 법률팀과 투자팀에 직접 업무 제안서를 보내면서 자문을 맡게 됐다”면서 “두바이투자청의 실질적인 이사회 의장격은 왕족이 맞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없으며, 인수나 이후 경영 매각 과정의 실무는 영국 출신 투자나 법률 전문가들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경영권 거래인 경우 협상의 최종 단계에 양측 최고 의사결정자가 서로 얼굴을 보고 최종 담판을 짓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매각에서도 두바이투자청의 대표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왕족 출신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위임장을 통해 서류에만 등장했을 뿐이다.
이 변호사는 “중동에서는 왕족에 관련한 내용은 최소한으로 공개하려는 관행이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거래를 신뢰성 있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위임장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중동국가들은 국가 간 서류 교류 시 각국 외교당국으로부터 빠르게 공증을 받을 수 있는 ‘아포스티유’(Apostille) 협약에 가입하고 있지 않다. 이 변호사는 “전세계 106개국이 가입되어 있지만 중동국가들은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해외 투자자와 거래보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쌍용건설 매각 사례에서는 사전에 가능한 한 위임장을 받아 놓은 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중동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국내 관행도 있다. 그는 “영미계 법률을 따르는 중동 투자자들은 미국 등에 있는 스퀴즈아웃(squeeze-out)제도와 유사하게 국내에서 지분 95%이상을 보유하면 남은 주식을 강제매수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지만, 실제로 잘 활용하지 못하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쌍용건설 매각 과정에서 두바이투자청과 글로벌세아 측은 막판까지 손해배상 청구조항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이 변호사는 “두바이투자청 입장에서는 인수후 일상적인 경영은 기존 경영진에게 맡겼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많이 질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면서 “다만 두바이는 투자할 때 영미법계 관행을 따르는데 이번 매각에서는 국내법을 준거 하기로 수락하면서 극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