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기로에 놓인 ‘도이머이’


1986년 베트남 공산당에서는 노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사상투쟁이 벌어졌다. 실용주의자였던 쯔엉찐 당시 공산당 서기장은 재정적자와 경제 불황에 따른 체제 위기를 해결하려면 개혁과 개방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개혁에 소극적인 보수파 원로들의 정책 오류까지 비판하면서 당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해 12월 제6차 당 대회에서는 그동안 금기시됐던 ‘시장경제’라는 말이 처음 나왔다.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을 알리는 ‘도이머이(Doi Moi)’ 선언이었다. 도이머이는 ‘도이(doi·바꾼다)’와 ‘머이(moi·새롭게)’의 합성어로 쇄신을 뜻한다.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도이머이 정책은 1995년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와 2007년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베트남은 사유재산 인정과 과감한 외자 유치, 전방위 외교 노선 등에 힘입어 1990년대 이래 연간 6~7%의 고도성장을 지속했다. 도이머이 시작 당시 100달러를 밑돌았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21년 3560달러로 불어났고 외국인 직접투자도 같은 기간 22배나 급증했다. 어느새 베트남은 ‘동남아 경제 허브’로 불리면서 개혁·개방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게 됐다.


최근 베트남 공산당 수뇌부가 교체되면서 도이머이가 기로에 놓였다. 친미 성향의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이 부패 스캔들로 물러나고 2일 새 국가주석에 친중파인 보반트엉 공산당 상임서기가 선출됐기 때문이다. 공산당 서기장부터 국가주석·총리·국회의장의 ‘빅4’ 고위직이 모두 친중파 인사 일색으로 채워졌다. 주로 베트남 북부 출신으로 이뤄진 친중파 지도부는 친미 노선을 걷는 서방주의파와 달리 개혁·개방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이미 베트남에서는 비판적 언론 및 인터넷 통제 등에서 중국을 닮아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베트남의 1위 투자국인 한국으로서는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중국과의 교역에 과도하게 의존했다가 탈(脫)중국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특정국 편중에서 벗어나 시장 다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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