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김상옥 등 독립운동가 61년만에 처음 훈격 높인다

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

훈격 상향 주장이 제기돼온 대표적 독립유공자들.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상옥(대통령장·1962), 박상진(독립장·1963), 이상룡(독립장·1962), 이회영(독립장·1962), 헐버트(독립장·1950), 나철(독립장·1962), 최재형(독립장·1962). 사진 제공=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포상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1962년 이후 61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운동가에 대한 훈격 재평가를 추진한다.


국가보훈처는 역사학계와 법조계 등의 전문가로 ‘독립운동훈격국민공감위원회’를 구성하고 7일 첫 회의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위원회는 6개월 정도 운영하며 공적 재평가 필요성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 등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쳐 훈격 조정 등 정책 방향을 마련할 계획이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추가로 확인된 공적까지 종합 재평가한 훈격 재조정을 추진할 것”이라며 “독립유공자 포상의 영예성을 담보하고 예우하는 일류 보훈 실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역사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훈격 상향 주장이 제기된 대표적 인물로 김상옥(1962년 대통령장), 박상진(1963년 독립장), 이상룡(1962년 독립장), 이회영(1962년 독립장), 최재형(1962년 독립장), 나철(1962년 독립장), 헐버트(1950년 독립장) 등을 예시했다. 독립유공자 훈격은 대한민국장·대통령장·독립장 등의 순서로 나뉜다.


김상옥 의사는 1920년 조선총독부 고관 처단을 시도하다 도피 후 궐석재판으로 사형을 언도받았고 1922년 조선 총독 처단과 총독부 폭파 등을 재차 시도하다가 체포를 피해 경찰에 맞서며 저항하던 중 순국했다. 박상진 의사는 1915년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조선국권회복단과 당시 국내 최대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총사령이 돼 1917년 칠곡 부호 장승원 처단과 1918년 아산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 등을 지시했다. 이후 중국 만주로 세력권을 확대해 활동하다가 체포 후 사형을 언도받고 순국했다.


이상룡 선생은 1896년 가야산에서 의병 봉기를 시도하고 1909년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결성해 회장에 추대됐으며 신민회의 독립운동 기지 건설 계획에 따라 1911년 대가족을 이끌고 중국 만주로 이주했다. 이회영 선생은 1907년 안창호·양기탁 등과 함께 당시 국내 최대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결성하고 경술국치 직후 중국 만주로 건너가 1912년 신흥무관학교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1932년 만주사변 이후 주만일본군사령관 처단을 목적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돼 고문으로 옥사했다.


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은 1949년 최초로 실시돼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김구·안중근·윤봉길 등이 1962년 대한민국장을 받았으나 일부 독립유공자는 공적에 비해 낮은 훈격으로 포상돼 공적 재평가를 통해 훈격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해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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