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잡는다"…K팹리스, GPU보다 10배 빠른 NPU로 추격

[초거대AI 개발 전쟁] <중>기회의 창 열린 AI반도체
엔비디아, SW 플랫폼 '쿠다'로
AI반도체까지 왕좌 굳히기 돌입
토종 퓨리오사·리벨리온·사피온
글로벌 동맹 손잡고 기술고도화
성능개선 칩 앞세워 점유율 높여

챗GPT 열풍으로 한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계에 ‘기회의 창이 열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세계 1위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인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지만 K팹리스들은 AI 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통해 점유율을 빼앗아오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초거대AI에 필수적인 NPU(Neural Processing Unit·신경망 처리장치)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자체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를 바탕으로 AI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굳히고 있는 만큼 향후 소프트웨어 고도화 전략이 K팹리스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NPU가 GPU보다 가격도 저렴=지금까지 AI에는 GPU가 주로 사용됐지만 앞으로는 효율이 좋고 가격도 저렴한 NPU가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GPU가 주로 그래픽 처리에 특화된 반도체라면 사람의 뇌를 모방해 만든 반도체인 NPU는 GPU보다 10배 빠른 연산처리가 가능하고 가격과 사용 전력량도 4분의 1이나 5분의 1 수준이어서 AI에 특화된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다. GPU 시장의 80% 이상을 독식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아성을 허물기 힘든 상황에서 NPU 시장을 적극 공략하면 국내 업체들도 AI 반도체 시장에서 ‘리더 보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 NPU를 개발하는 AI 반도체 팹리스 업체로는 퓨리오사AI·리벨리온·사피온이 손꼽힌다. 이 중 퓨리오사AI는 AMD와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던 백준호 대표가 2017년 설립한 업체로 2021년 신경망 반도체(NPU) ‘워보이’를 내놓으며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에 관련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퓨리오사AI는 내년 초 2세대 칩을 선보이며 시장 장악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현재 5나노 기반의 2세대 칩 설계를 마무리하고 디자인하우스에 제품을 맡긴 상태다. 디자인하우스가 2세대 칩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전문)에 맡기면 내년 초부터 본격 양산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퓨리오사AI의 2세대 칩은 1세대 칩 대비 하드웨어 성능은 8배, 데이터 전송속도는 30배가량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 계열의 사피온이 2020년 선보인 ‘X220’은 반도체 성능 테스트 대회 ‘엠엘퍼프’에서 엔디비아의 GPU ‘A2’ 대비 2배 이상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입증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사피온 X220은 엔비디아의 GPU 대비 전력 소비는 40%가량에 불과한 반면 성능은 1.6배 수준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사피온은 올 하반기 ‘X220’ 대비 성능을 4배 이상 끌어올린 7나노 공정 기반의 ‘X330’을 내놓을 예정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 출신인 박성현 대표가 2020년 창업한 리벨리온은 2021년 AI 반도체 ‘아이온’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달에는 ‘아톰’까지 출시하며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톰은 챗GPT에 활용된 엔비디아의 GPU ‘A100’과 비교해 전력소비량이 2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KT가 상반기 출시 예정인 초거대AI 서비스 ‘믿음’에 아톰이 탑재된다.


◇소프트웨어 생태계 판도 변화에 성패 달려=반도체 업계에서는 국내 팹리스들이 엔비디아 제품보다 우수한 성능의 제품을 내놓더라도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망을 제기한다. AI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엔비디아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달 한 학술대회에서 “AI 반도체 관련 인재를 뽑으면 모두가 엔비디아 GPU와 쿠다를 쓰게 해달라고 요구한다”면서 “SK의 사피온을 가지고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달라고 요구하면 3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실제 AI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쿠다는 개발자들이 AI용 소프트웨어를 보다 쉽게 개발하도록 하는 일종의 플랫폼으로 2006년 공개된 후 지금까지 누적 다운로드 수만 3000만 건에 이르며 쿠다를 사용하고 있는 개발자 수만 300만 명에 달한다. 개발자들은 엔비디아의 GPU가 아닌 다른 반도체를 AI 개발에 활용할 경우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최소 3~5배가량의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만큼 엔비디아 제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내 팹리스가 개발한 AI 반도체가 엔비디아의 GPU 대비 성능이 최소 3~5배가량 뛰어나지 않는 이상 ‘졸면 죽는다’는 AI 업계에서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대응해 국내 팹리스 또한 국내외 업체와 협업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퓨리오사AI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허깅페이스’와 손잡고 개발자 대상의 AI 소프트웨어 플랫폼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허깅페이스는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웹서비스 등과도 협업 중인 만큼 앞으로 개발자 다수를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다른 팹리스 또한 개발자를 대상으로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 등을 제공하며 엔비디아의 벽을 넘어서겠다는 계획이다. 퓨리오사AI 관계자는 “2021년 1세대 칩인 워보이를 내놓을 당시 우리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이 엔비디아의 50% 정도로 분석되는 만큼 타 업체와의 협업으로 경쟁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며 “엔비디아의 GPU가 AI 반도체에 최적화가 덜 돼 있다는 점에서 국내 팹리스들도 경쟁력과 상업성이 충분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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