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MZ세대 등장으로 집단적 노사관계 수명 다해…임금체계 개편해야”

◆노동문제 전문가 이지만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호봉제는 MZ 요구 수용 못해, 능력·성과급제 전환 필요
노동 유연성 높여 대·중기 이직사다리로 미스매치 해소
육아·출산 획기적 지원으로 여성 경제활동 참가 늘려야
노동·규제 개혁 이론적 토대 제공 위한 싱크탱크도 절실

고도 성장을 구가하며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 경제가 갈수록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성장의 한계가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장 정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불공정과 비효율을 유발하는 경직된 노동시장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동시장의 개혁 없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이어 “저출산과 인구 감소에 대처하면서 MZ세대가 요구하는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고 고용의 미스매치를 해소하려면 노동시장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민간 경제단체의 양대 축인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힘을 합쳐 노동시장과 규제 개혁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싱크탱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가 주도하는 노조가 출범해 화제가 되고 있다.


△20년 동안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는데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예전에는 같은 과 학생들끼리 서로 다 알고 가치관도 비슷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학생들의 생활 양상이 개별화되고 가치관도 다양해졌다. 그래서 획일성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상당하다. MZ세대의 성향을 보면 집단적 노사 관계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사 관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뜻인가.


△집단적 노사 관계에서 개별적 노사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급제는 집단적 노사 관계의 산물이다. 하지만 MZ세대는 인풋(input·노력과 성과)과 아웃풋(output·보상)이 비례하는 것을 공정이라고 여긴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낸 사람이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이 바로 공정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노사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과와 능력만 중시하면 낙오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는데.


△MZ세대는 능력과 성과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원한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낙오된 사람에 대한 보호는 1차적으로 정부가 해야 한다. 정부가 사회보장제도와 재취업제도 등을 통해 제2의 일자리를 얻어 제2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일자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실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당연히 기업도 저성과자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다른 직무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라고 한다. 전직 및 퇴직관리제도 등이 대표적 사례다. 재취업 중심의 복지제도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다. 성장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들이다. 특히 노동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경제활동참가율 향상과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해소에 둬야 한다.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한국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1위, 고용률은 29위다. 고용률을 높이려면 청년·여성·고령 인력의 일자리 확대, 노동 개혁, 교육 개혁 등이 필요한데 모두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하는데 한편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우리나라는 실업률도 높지만 구인난도 심각하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와 근로조건 차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대기업에 들어가면 대기업 직원의 혜택을 평생 누린다. 반대로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대기업으로 이직하기도 매우 어렵다. 대·중소기업 취업 시장 간 사다리가 끊긴 것이다. 저는 이를 격차사회라고 부른다. 격차가 크다 보니 청년들은 삼수·사수를 하더라도 대기업에 들어가려 하고 중소기업들은 직원을 구하기 힘들다. 일자리 미스매치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대·중소기업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다. 대기업 기득권 노조 때문에 저성과자에 대한 구조 조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임금 조정도 어렵다 보니 대기업들은 신규 채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번 채용하면 저성과자라도 정년까지 임금을 보장해야 하니 어느 기업이 쉽게 채용하겠는가. 일자리 매스매치로 인재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니 국가적으로 큰 낭비이고 청년들도 행복하지 못하다.





-교육 개혁도 노동시장의 미스매치 해소를 위해 필요한가.


△당연하다. 사회적 수요가 많은 이공계 학생의 비중은 늘리고 인문계 정원은 줄여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정원을 줄이면 자신들의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어떤 교수가 찬성하겠는가. 대학 졸업자는 수요 대비 공급이 너무 많고 고졸 및 전문대 졸업자는 공급이 수요보다 적다. 이렇다 보니 심지어 대학 졸업생이 폴리텍대 계약학과에서 1년 동안 공부한 뒤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낭비를 막으려면 교육 개혁 중에서도 대학 교과 내용, 즉 커리큘럼 개혁이 시급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뚝 떨어져 충격을 주고 있는데.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사회 전반적인 노동력 부족은 보통 초고령사회(65세 인구 비율 20% 이상)에서 나타나는데 우리나라는 2025년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이제 시간이 없다. 저출산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는 어려우므로 노동력 부족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무엇보다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 미스매치 해소 외에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 특히 출산과 양육 문제 때문에 여성들의 경력 단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준다는 식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출산 및 육아휴가를 확대하고 육아기 동안 근로시간을 단축해주는 등의 근로조건 및 환경의 획기적 개편이 필요하다.


-고용률을 높이려면 정년 연장도 필요한가.


△엄격히 표현하자면 정년 연장보다는 고용 연장이 필요하다. 또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 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의 임금피크제는 정년 60세 입법 당시 5년 동안 정년이 연장되는 데 따른 혜택을 분산해 청년 고용을 늘리기 위해 단기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는 나이 차별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갖고 있다. 능력이 있다면 나이에 관계 없이 일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정년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임금피크제는 필요 없다. 다만 이를 위해 현재의 연공급제를 생산성과 성과연동보상제로 전환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나이가 많아도 능력과 성과가 크면 많은 보수를 받고 나이가 들어 생산성이 떨어지면 보수를 적게 받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정년 및 고용 연장은 어렵다.


-임금 체계는 어떤 방식으로 개편하는 게 바람직한가.


△현 정부는 직무급제를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하려 하지만 직무급제 외에 능력급제·역할급제·성과급제 등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호봉제 임금 체계의 문제점인 생산성과 임금 간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자동 승급 없는 호봉제와 성과급제를 결합한 임금 체계 전환, 그리고 호봉제+직능급제+직무급제+성과급제의 혼합형 임금 체계를 실행하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노동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근로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조의 역할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기득권이 형성되면 공정성을 해친다. 기존 노조가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해 능력이나 성과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 하면 이는 MZ세대에 불공정을 야기시킨다. ‘임금 루팡’이라는 신조어도 결국 기득권의 카르텔에서 비롯됐다. MZ노조는 이를 깨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꿈과 희망이 실현되는 노동 현장을 구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차별과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차별은 성별, 국적, 사회적 신분 등에 따라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고 차이는 능력이나 역량 또는 결과·성과로 다르게 대우를 받는 것이다. MZ 노조는 차이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 경제단체들이 과도한 포퓰리즘 입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보통 5대 경제단체라고 하지만 순수한 민간 경제단체는 전경련과 경총 두 곳이다. 재계를 대표하던 전경련이 ‘국정 농단 사태’ 이후 위상이 추락해 누구도 회장을 맡으려 하지 않는 사태까지 왔다. 노사 관계를 전담하던 경총이 경제 이슈 전반을 다루는 등 그 공백을 메우려 하지만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역할 분담을 통해 정·관계에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힘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전경련과 경총이 다시 합쳐 경제계의 통합된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두 기관의 집행부가 자발적으로 통합하기 어려운 만큼 두 곳에 공통적으로 가입한 회원사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두 기관의 연구 기능을 합해 미국 헤리티지재단 같은 보수 싱크탱크를 만들어 노동·교육·연금 개혁 등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He is…


1965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노사 관계, 고용 정책, 인적자원 관리 등 주로 노동 문제에 대해 강의하고 연구해왔다. 연세대 경영대학장 및 경영전문대학원장·경영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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