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몰릴땐 야간에도 연장근무…선택근로 전 업종 3개월로 확대

[고용부 근로시간 개편안 발표]
특정주 집중근로 후 휴식 보장
포괄임금 핑계 공짜야근 근절
"노사에 시간주권 돌려주는 것"
'일한 만큼 보상'에 성패 달려
제도 안착땐 주4일·4.5일 가능


원청 업체로부터 긴급 발주를 받은 하청 업체 A 대표는 2주만 직원들과 고생을 하면 납기를 맞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첫째 주는 연장근로 29시간을 더해 주 69시간(법정근로시간 40시간) 일하고, 둘째 주도 연장근로 23시간을 추가해 주 63시간 근무하는 스케줄을 짰다. A 대표는 2주간 밤낮으로 일한 덕에 납기를 맞춰 한숨을 돌렸다. 대표와 고생한 직원들은 셋째 주와 넷째 주는 연장근로 없이 일찍 퇴근했다. 근로자 B 씨는 제주 한 달 살기가 꿈이다. 이를 위해 연장·야간·휴일근로 보상을 수당 대신 미래의 휴가(저축휴가)로 모았다. 그는 법적으로 주어진 연차휴가와 자신의 성과로 얻은 저축휴가를 합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고용노동부가 6일 발표한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토대로 그려본 일터의 변화다. 현행 주 52시간제였다면 A 대표는 2주간 납기를 위한 집중 근로를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근로자 1명이라도 하루 1시간을 넘기면 주 52시간제 위반이기 때문이다. B 씨도 자유로운 휴가에 인색한 한국의 기업 문화와 현행 제도 아래 계획하기 어려운 일상이다. 이처럼 근로시간제 개편안의 핵심은 주 52시간제에서 가능하지 않던 다양한 근로 형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일하고 싶을 때 더 일하고, 쉬고 싶을 때 더 쉬는 방식이다. 여기에 고용부는 일한 만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임금 질서 확립에 나선다.




고용부는 이날 주 단위인 연장근로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는 방식의 총량관리제를 도입해 근로시간제를 다양화하는 안을 냈다. 개편안대로라면 선택지는 현행 주 52시간제와 주 64시간제, 주 69시간제 등 세 가지다. A 대표 기업이나 개발프로젝트 완료가 시급한 정보기술(IT) 기업, 성수기 일감이 몰린 기업 등 연장근로가 더 필요한 사업장은 주 64시간제 또는 주 69시간제를 활용하면 된다.


두 제도는 공통적으로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가 이뤄질 때 가능하다. 두 제도의 차이는 11시간 연속 휴식의 유무다. 주 64시간제는 11시간 연속 휴식이 없지만 야근을 하고 출퇴근 시간 조정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반면 주 69시간제를 쓰면 11시간 연속 휴식을 통해 근로자의 건강권이 한층 더 보호된다. 단 총량관리제는 단위기간에 비례해 연장근로시간을 줄였다. 연장근로 남용에 따른 근로자의 건강권을 위해서다. 예를 들어 현행 주 52시간제일 경우 3개월 연장근로시간은 156시간(52시간Ⅹ3개월)이다. 하지만 총량관리제를 도입해 분기(3개월)로 관리할 경우 156시간의 90%인 140시간만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반기는 80%, 연은 70%만 주 52시간제에서 가능하던 연장근로 총량을 쓸 수 있다. 또 4주 평균은 주 64시간에 맞춰야 한다.


고용부는 근로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근로자의 근로 주권과 쉴 권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안은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이다. 미흡하다고 지적된 현행 보상휴가제를 개선한 이 제도는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적립할 수 있다. 근로자가 원할 때 적립한 시간을 휴가로 사용하는 구조다. 일하고 싶은 날과 시간을 근로자가 조정할 수 있는 선택근로제도 전 업종이 1개월에서 3개월로, 연구개발 업무는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 추진된다. 이 제도가 안착된 사업장에서는 주 4일제나 주 4.5일제도 가능하다. 자녀 등·하원에 따라 출퇴근 조정이 필요한 맞벌이 부부들이 선호할 만한 제도다.


또 고용부는 과로사 위험이 높은 야간근로·작업에 대한 보호 방안을 추진하고 휴식권 보장이 가능한 일터 문화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장기적으로 퇴근 후 상사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도록 하는 식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 제도화에 대한 논의도 착수한다.


근로시간제 개편안의 성패는 근로자가 부당 근로를 강요받지 않고 일한 만큼 제대로 수당을 받는 데 달렸다. 이 임금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개편안은 장시간 근로만 부추긴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우선 고용부는 공짜노동을 부추긴다고 비판 받아온 포괄임금제의 오남용 막기를 핵심 대책으로 제시했다. 포괄임금제 오남용은 임금 체불과도 같다. 이미 포괄임금제 오남용 사업장에 대한 기획감독에 나선 고용부는 이달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또 고용부는 총량관리제 도입을 결정하는 등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근로자대표제를 정비하기로 했다. 현행 근로자대표제는 근로자대표에 대한 선출이나 활동 규정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고용부는 일터에서 근로시간의 기록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방안도 마련 중이다. 근로시간은 임금대장처럼 기록 의무가 없는 실정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제도 개편의 지향점은 선택권·건강권·휴식권의 보편적 보장”이라며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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