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심심찮게 접하는 ‘플로깅(plogging)’은 스웨덴에서 온 단어다. 줍다는 의미의 ‘플로카 업(plocka upp)’과 조깅을 뜻하는 ‘조가(jogga)’를 합성해 ‘쓰레기를 주우며 조깅하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플로깅(또는 줍깅)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2030 세대가 자발적으로 플로깅 모임을 만들어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기자는 한라산 등반에 나섰다가 예정에 없던 플로깅을 하게 됐다. 하산길 곳곳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였다.

◇등산객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라산=한라산에서 맞닥뜨린 여러 쓰레기 중 단일 품목 1위는 담배꽁초였다. 국립공원에서의 흡연은 자연공원법에 따라 최대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불법행위다. 흡연 과실로 산불이 날 경우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자가 가장 많이 주워 담은 쓰레기는 담배꽁초였다. 한참을 줍다 보니 막판에는 나뭇가지 조각마저 담배꽁초로 보일 지경이었다.

더구나 누군가의 입에 들어갔다 나온 터라 집게 없이 맨손으로 줍기도 찜찜했다. 그러나 그대로 버려두고 지나치기에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담배 필터는 ‘셀룰로스아세테이트’라는 플라스틱 물질로 제작돼 있다. 바다에 유입되면 미세플라스틱으로 자연 분해돼 해양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먹이사슬을 따라 우리 식탁에 돌아온다.

담배꽁초에 이어 버려진 쓰레기 2위를 차지한 것은 플라스틱 생수병이었다. 이 밖에 아이젠이나 등산 스틱 부속처럼 누군가 잃어버린 등산용품, 우산, 인공 눈물, 휴지, 달걀·귤껍질 등도 새하얀 눈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특히 달걀과 귤껍질을 버리는 사람이 많은지 등산로에는 ‘달걀 껍데기와 귤껍질도 쓰레기’라며 무단으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안내 표지판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플로깅 3시간 만에 작은 비닐 봉투가 꽉 찼다. 아이젠이며 부러진 등산 스틱 등 부피가 큰 쓰레기는 봉투에 담을 수 없어 배낭에 넣어 내려왔다.

◇제주 바다에서 수거된 쓰레기 1위도 담배꽁초=제주환경운동연합에서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2022 제주줍깅 캠페인’을 진행한 결과 해양 쓰레기 중 가장 많이 발견된 것은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파편이었고 그다음이 담배꽁초였다. 2021년에는 스티로폼 등 어업 활동 쓰레기를 제치고 담배꽁초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환경 단체 ‘쓰줍인(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만든 전국 꽁초 지도를 보면 담배꽁초의 폐해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쓰줍인은 각 지역에서 활동 중인 쓰줍인들의 제보와 사진 등을 받아 매달 각 지역에서 수거한 담배꽁초 현황을 발표한다. 지난해 전국 쓰줍인들이 주운 담배꽁초는 총 36만 8542개, 이 중 제주도에서는 4010개가 보고됐다. 미약하나마 기자가 주운 담배꽁초 개수와 사진을 쓰줍인에 제보했다.

◇가장 쉬운 환경 사랑법 ‘플로깅’=담배꽁초에는 A급 발암 물질인 니트로사민을 비롯해 수천 개의 독성 물질이 함유돼 있다. 2020년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길에 버려지는 담배꽁초는 하루에만 약 1246만 개에 달한다. 이 중 최소 45만 개에서 최대 231만 개, 즉 매년 약 1억 6000만~8억 4000만 개는 하천과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길에 버리면 안 되는 이유다. 특히 빗물받이에 버리면 장마철에 역류를 일으켜 홍수 피해를 키우기도 한다.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를 모두 막을 수는 없다. 담배 필터를 포함한 플라스틱 제품 생산을 중단시킬 수도 없다. 쓰레기가 덜 배출되도록 일상에서 노력해야겠지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은 플로깅이다. 특별한 준비가 없어도 지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 혼자 해도 되지만 뜻이 맞는 누군가와 함께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쓰줍인의 경우 자유롭게 쓰레기를 주운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쓰줍인 해시태그를 통해 인증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참여할 수 있다. 기자처럼 꽁초 지도에 데이터를 제보해도 좋다. 쓰줍인 SNS에 올라오는 지역별 오프라인 모임 공지를 확인하고 신청해 쓰줍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담배 회사 KT&G에 ‘담배꽁초 11만 개’를 모아 보낸 사단법인 와이퍼스도 대표적인 플로깅 플랫폼이다. 와이퍼스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으면 지역별 플로깅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