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 이후 거세게 일었던 ‘NO재팬(일본 불매)’으로 고전했던 일본 제품들이 판매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맥주와 일본 자동차 수입량은 올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매출도 증가했다. 아직 수출 규제 조치 이전 수준까지 돌아가진 않았지만, 업계는 정부가 꺼내든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 합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일본 맥주 수입액은 200만 4000달러로 지난해 동월보다 314.9% 급증했다. 이는 일본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빌미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나선 2019년 7월(434만 2000달러) 이후 3년 6개월 만의 최대다.
일본 맥주 수입액은 2019년 7월 400만 달러가 넘었으나 바로 다음달 22만 3000달러로 쪼그라든 데 이어 9월에는 6000달러까지 급감하며 바닥을 찍었다. 아사히·삿포로·기린 등의 일본 맥주는 대형마트와 편의점 매대 등에서 사라졌고 한동안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불매 운동이 약해지며 지난해 3월 일본 맥주 수입액이 150만 3000달러로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처음으로 100만 달러 선을 회복했다. 또 지난해 5~12월에는 8개월 연속 100만 달러 선을 웃돌았고 올해 1월에는 200만 달러 선마저 돌파했다. 일본 맥주 수입액을 연도별로 봐도 지난해 수입액은 1448만 4000달러로 전년 대비 110.7% 늘었다. 최근에는 일부 대형마트에서 아사히·삿포로 등 일본 맥주를 4캔 9900원에 판매하는 판촉 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맥주 수입액 중 일본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7.4%였다. 이 비중은 일본의 수출 규제 전인 2018년에는 25.3%에 달했으나 2019년 14.2%에 이어 2020년 2.5%로 추락했다. 2021년에도 3.1%에 그쳤고 지난해 7.4%로 회복했으나 아직 수출 규제 조치 이전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일본산 위스키는 일찌감치 NO재팬 분위기에서 벗어났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하이볼이 큰 인기를 끌면서 ‘야마자키’와 ‘히비키’를 중심으로 수입액이 크게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위스키 수입액은 414만 8000달러로 2021년(315만 7000달러)보다 31.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396톤이던 수입량도 533톤으로 34.6% 늘었다. 2018년 158만 달러 수준이던 일본 위스키 수입액은 불매 운동이 본격화한 2019년 136만 달러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이듬해부터 증가세를 보이며 이후 꾸준히 수입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불매 운동 이전 일본산 주류의 간판 품목은 맥주였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홈술, 혼술 문화가 자리 잡으며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위스키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일본 의류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일본계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의 2021년도(2021년 9월~2022년 8월) 매출액은 704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9% 늘었다. 영업이익은 1148억 원으로 116.8% 증가했다.유니클로는 2005년 한국에 진출해 10년만인 2015년 패션 브랜드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에프알엘코리아의 매출액은 2018년도 1조 3781억 원까지 올랐다가, 일본 불매 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뒤 2019년 6298억 원으로 급감했다. 이어 2020년에는 5824억 원으로 줄었다가 2021년도에 7000억 원 수준으로 회복됐다.
일본 브랜드의 자동차 수입 실적도 약진이 두드러졌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 승용차 신규등록 대수는 렉서스와 토요타가 1344대와 695대로 지난해 동월보다 183%, 149% 각각 증가했다. 이로써 렉서스는 BMW(6381대), 메르세데스-벤츠(5519대), 아우디(2200대)에 이어 4위를 차지했고 토요타는 포르쉐(1123대), 볼보(827대)에 이어 7위에 올랐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는 지난해까지 일본산 불매 운동으로 고전했다. 지난해 2월에는 렉서스와 토요타의 신규등록 대수가 474대와 279대로 9위와 11위였다.
이처럼 NO재팬 운동이 시들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 6일 한일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를 매듭 짓겠다고 밝혔다. 피해배상 해법은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의지 속에서 ‘한국의 독자 해결’ 발표로 일단락됐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 일본 초계기 레이더 사건 등 징용 갈등에서 파생된 일련의 문제들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수출규제 이슈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를 중단했지만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를 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16일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가 윤 대통령의 구상에 어느 정도 호응할지가 주목된다. 업계에선 일본의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 대상국) 배제 조치가 철회되면 일본산 소비재 시장의 회복세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