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6위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고금리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10일 파산했다. 미국 은행 파산으로는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캐나다·중국·인도·이스라엘 등에 지점을 두고 전 세계 스타트업의 ‘돈줄’ 역할을 해온 SVB의 파산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SVB는 저금리 시절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장기 채권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문제가 불거졌다. 자금 경색에 처한 스타트업이 돈을 빼내면서 예금이 줄어들었고 예금 인출 요구에 응하기 위해 손실을 감내하면서 채권을 팔다가 결국 파산했다. SVB의 파산은 잠재돼 있던 고금리의 충격파가 미국을 진원지로 삼아 전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경고장이다. 고금리가 부동산 시장을 위축시키고 기업·개인의 대출금 상환 압박을 가중시키는 수준을 넘어 금융 부실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SVB의 파산으로 수많은 스타트업이 줄도산하면 리스크는 금융권에 전이될 것이다. 게다가 대규모 실업 사태까지 발생하면 미국의 경기 호황도 끝나고 글로벌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깊게 빠져들 수 있다. 2008년 금융 위기는 금리 인상과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금융기관 파산으로 촉발됐다. 이번에도 고금리→스타트업 자금 경색→금융기관 부실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말란 법이 없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등 경제·금융 수장들은 12일 간담회를 열어 SVB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과 대책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SVB 사태로 인한 국내 금융 시장의 타격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 신속히 대응하기로 했다. 우리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양호한 수준이지만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저금리의 훈풍을 타고 연명해온 좀비 기업들이 전체 기업의 40%에 달하는 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도 심각한 수준이다. 당국은 “국내 은행 중 SVB에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있는 곳이 없어 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이 없다”고만 말하지 말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 시스템 전반을 면밀히 점검해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