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갯속 세계 경제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이용해 러시아를 목표로 삼고 서방이 시작한 전쟁이다.”


세르게이 라블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3일 인도 외무성이 주관하는 라이시나대화에서 이 같이 말해 청중의 야유를 받았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여운은 남는다. 러시아의 휴전 협상 의지를 서방이 의도적으로 오해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현장의 지지와 박수도 있었다. 여러 갈래로 분열된 국가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하게 된 순간이다. 러시아 지원 세력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이 전쟁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는 여전하지만 그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올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결정적인 변수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 세계 경제 회복 여부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왜 그럴까. 미중 갈등,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긴 그림자가 여전하고, 그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급속히 추진되는 디지털화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기술과 설비 부문에 현재 능력 이상으로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이는 지정·지경학적 세계 질서를 바꾸고 있다. 세계 경제 질서는 마치 극지방 빙산이 깨지듯이 몇십 년 만에 새로운 형태로 움직이고 있고, 그 파열음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 통화 당국이 추진한 가파른 금리 상승을 통한 반(反) 인플레이션 정책은 각국에 큰 고통을 주고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조금씩 빚 내서 사탕을 쥐어주다가 한꺼번에 청구서를 내미는 형국이다. 반 인플레이션 정책은 작금의 현실에서 가장 필요함에도 정치적으로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노동 시장에서는 구인난이 여전하다. 구직자들이 적절한 일자리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수급 불일치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 요인은 팬데믹 이후 급격한 디지털화에 따른 경제 구조의 변화다. 팬데믹 여파로 비경제활동 인구가 증가하고, 단기·계절 노동자들의 국가간 이동을 막는 제약이 빨리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의 경우 중국의 리오프닝을 계기로 수출 회복을 도모하고 그것을 경기 회복의 신호탄으로 만드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의 수출 수요가 단기간에 빠르게 촉진되기는 어렵다. 일단 재고 소진이 돼야 급반등이 가능하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대(對)중 경쟁력 우위 상실에 따른 수출 정체는 보다 심각한 문제다.


공급망 정체는 꾸준히 개선될 것이나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에너지와 식량 가격은 높은 수준에서 불안정할 것이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올 10월 모니터링을 시작하는데 해당 국가들은 새로운 통상장벽으로 인식하고 거칠게 반발하고 있다. 통상 규범과 환경 협정 간의 긴장 관계는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상은 올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이전에 종료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시장 접근 분야가 제외돼 있다고 할지라도 섬세하게 대응해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