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 나선 가운데 국가 간 원활한 결제를 도울 플랫폼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창재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7일 서울 목동 방송기자클럽에서 열린 초청토론회에서 가상화폐 기술을 적용한 신산업 발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며 CBDC 발행도 적극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해 말 CBDC 모의 시스템을 구축해 15개 금융기관과 CBDC 활용 방법·성능을 테스트했고 후속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금융기관과 다음 단계를 논의 중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CBDC 발행 여부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발행이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중앙은행이 블록체인의 분산 원장 기술을 활용해 발행한 디지털 화폐다. CBDC는 중앙은행이 보증해 비트코인과 같은 민간 암호화폐보다 신뢰가 높으며 가치 변동이 거의 없다. CBDC는 거래 기록이 남지 않는 현금과 달리 거래 기록을 추적할 수 있어 금융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또 국가 정책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발행할 수 있고 사용하기 간편하기 때문에 금융 포용성을 넓힐 수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한 방안 중 대다수 중앙은행은 CBDC 개발에 ‘혼합형 시스템’을 활용 중”이라고 말했다. 혼합형 시스템은 중앙은행이 CBDC를 금융기관에 유통하고 금융기관은 사용자의 전자 지갑을 관리하는 역할 분담 시스템이다.
CBDC는 지급 결제가 빠르고 분산원장을 활용해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뜨겁다.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하면 중앙은행과 여러 금융기관이 각자 거래 원장을 보관하고 이를 서로 검증해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토큰 경제에서 증권대금동시결제(DVP) 등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도 CBDC의 장점이다.
CBDC는 빠른 결제 속도로 국가 간 결제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지만 단기간에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질진 미지수다. 세계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CBDC 거래 호환성 테스트에 나선 만큼 CBDC를 단기간에 국가 간 결제에 활용하기엔 무리일 수 있다. 쟁글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의 엠브릿지(mBridge) 프로젝트와 호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이 참여한 프로젝트 던바(Project Dunbar)는 프로젝트 참여 국가끼리만 상호 거래 가능성을 테스트했다.
업계에선 서로 다른 국가의 CBDC를 교환하기 위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내다봤다. 세계 중앙은행이 유동성 관리 문제로 CBDC를 독자적으로 개발 중이지만 다른 국가와 CBDC를 원활히 교환할 수 있도록 기술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상미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서로 다른 CBDC를 교환하기 위해선 이를 연동할 수 있는 플랫폼을 기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각 국의 CBDC를 교환하기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려면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해주는 ‘브릿지’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조진석 한국디지털에셋(KODA) 이사는 “블록체인 기술 기업이 CBDC를 국가 간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기술적으로 마련한다면 국가 간 CBDC를 원활히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