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땀흘리며 쓴 천자문이니 열심히 공부하거라"

이항복 친필 천자문 '보물' 지정예고
손자교육 위해 8자씩 125면 손수 적어

'이항복 해서 천자문'은 이항복이 손자 이시중을 위해 손수 쓴 것으로, 한 면에 8자씩 본문만 125면에 이른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초여름 날, 손자 이시중을 위해 (천자문을) 쓴다. 오십 노인이 땀을 뿌리고 고생을 참으며 썼으니 골짜기에 던져서 이 뜻을 저버리지는 말아라.” (丁未首夏, 書與孫兒時中. 五十老人, 揮汗忍苦, 毋擲牝以孤是意)


‘오성’ 이항복(1556~1618)이 손자 교육을 위해 손수 적은 천자문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13일 ‘이항복 해서 천자문’과 조선 중종대 ‘독서당 계회도’, 고려시대 불상인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등 문화유산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항복 해서 천자문’은 선조 40년이던 1607년 이항복이 손자 이시중(1602∼1657)의 교육을 위해 직접 써서 내려준 천자문이다. 천자문은 총 126면 분량으로, 본문 125면과 발문 1면으로 구성돼 있다. 본문 한 면을 2행으로 나눠 한 행에 4자씩 한 면에 8자를 적어 125면에 1000자를 담았다. 서체는 해서이며, 각 글자 아래에 한글로 음과 뜻을 달아 놓았다. 한글 해설문은 “후대에 서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문화재청 측의 설명이다.



보물로 지정예고된 '이항복 해서 천자문'의 앞 면. /사진제공=문화재청

책의 끝에는 “정미년(1607년) 이른 여름(음력 4월) 손자 이시중에게 써 준다. 오십 노인이 땀을 뿌리고 고생을 참으며 썼으니 골짜기에 던져서 이 뜻을 저버리지 말라”는 이항복의 발문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제작자와 제작시기 등이 확인된다. 이항복이 후손 교육에 쏟은 각별한 관심과 애정도 확인할 수 있다. 발문은 약간 흘려 쓴 한자 서체인 행서(行書)와 곡선 위주의 흘림체인 초서(草書)로 구성된 ‘행초서’로 적혔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관계자는 “‘이항복 해서 천자문’은 한 글자가 약 8cm로 가장 크고, 시기도 가장 이른 육필 천자문이다”면서 “서예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며, 한자 밑의 한글 음과 뜻은 이 시기 한글 변천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국어사적 자료라 평가된다”고 보물 지정 이유를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