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가’ 연준에 밤잠 설치던 한은…SVB 덕에 금리 인상 부담 덜까 [조지원의 BOK리포트]

불확실했던 FOMC, 빅스텝 불확실성 사라져
환율·주가 등 불안하지만 美 긴축 부담 덜어
14일 美 CPI, 21~22일 FOMC 지켜봐야

금융규제 당국의 예금자 보호 조치로 예금 접근이 가능해진 13일 오전(현지시간) SVB 본사 앞에 각국의 미디어들이 취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통화정책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올해 초 미국에서 경기침체 우려가 나오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2월 초 ‘디스인플레이션’을 처음 언급했을 때까지만 해도 긴축 속도를 조절할 것이란 기대가 쏟아졌다. 그런데 이후 고용·물가 지표가 견조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긴축 우려가 다시 커졌고 시장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후 파월 의장이 의회에서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3월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은 크게 확대됐다.


예측할 수 없는 연준의 행보에 한국은행도 복잡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금융통화위원들은 2월 금통위서 기준금리를 1년 만에 동결하면서도 최종금리는 3.75%까지 더 올릴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뒀다.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도 “파월 의장 발언이나 미국 지표가 공개되면서 불확실성이 걷히고 있다”면서도 “셈범은 복잡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은은 14일 발표되는 미국 소비자물가(CPI)를 포함해 미국 경제 지표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귀를 곤두세우면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SVB발 금융시장 불안이 연준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빅스텝 가능성을 없애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다. 미국 금융당국의 개입 조치로 시스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줄자 연준의 통화정책으로 시장의 관심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연방기금금리(FFR) 선물에 반영된 정책금리 기대를 보면 50bp 인상은 0%대로 축소되고 25bp 인상은 95% 수준으로 확대됐다. 노무라와 JP모건은 SVB 사태를 감안하면 3월 FOMC에서 50bp보다는 25bp 인상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골드만삭스는 아예 3월 동결을 전망했다.


13일 SVB 파산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불안이 예상됐던 금융시장은 연준 속도 조절 가능성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였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전일 대비 0.7%, 0.0% 상승했고 국고채 3년물 금리도 3.44%로 26bp(1bp는 0.01%포인트) 급락했다. 미 금융당국의 예금 보호조치와 함께 미 연준의 통화 긴축 가속화 기대가 약화된 영향이다. 특히 원·달러 환율은 1301.8원으로 하루 만에 22.4원 급락했다.


다만 하루가 지난 14일 오전 시장 경계감이 되살아나면서 주가는 급락하고 환율도 상승 전환한 상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안정됐다고 하면서도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아직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시스템 불안요인까지 겹치면서 향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이날 거래를 시작한 코스피, 원/달러 거래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시장에서 SVB가 연준의 금리 인상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이번 사태가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금융시스템에 부담을 주고 있음이 드러난 사례이기 때문이다. 연준은 지난해 2월 0.00~0.25%에서 올해 2월 4.50~4.75%까지 1년 만에 450bp(1bp는 0.01%포인트) 올렸다. 시장에서는 가파른 금리 상승의 부작용이 반드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마침 이번 사태가 터져 나온 것이다.


SVB는 주된 거래처인 벤처기업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예금인출을 늘리자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18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채권매각손실이 발생했다. 손실이 발생한 직접적인 이유는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채권금리가 급등한 영향이다.


송기종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3실장은 “이번 SVB 사태는 가파른 금리 상승의 부작용이 금융시장에 스트레스 정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연준 입장에서 향후 정책금리 인상 폭과 속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고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준이 SVB 사태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도 향후 행보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꼽힌다. 파월 의장은 SVB 사태 발생 3일 전 의회에 출석해 추가적인 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던 만큼 이번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SVB 사태로 미국 경기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 역시 추가적인 금리 인상 필요성을 줄이는 요인이다. 미국 내 스타트업 기업들이 자금조달 어려움으로 대규모 해고에 나선다면 미국 경제엔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1984년 미국 내 자산 기준으로 7위였던 콘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의 파산 사태도 거론되고 있다. 당시 연준은 콘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이 파산하자 긴축을 중단하고 이후 금리를 인하한 바 있다.


금리 추가 인상에 부담을 느껴온 한은 입장에서 연준의 속도 조절은 바라던 바다. 2월 금통위 이후 이창용 총재 간담회 등을 보면 기준금리를 3.75%까지 반드시 올려야 한다는 것보다 현 수준인 3.50%를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다.


국내 물가와 성장만 보더라도 통화정책 판단이 어려운데 미국 긴축 등 대외 변수 영향이 줄어드는 것은 호재다. 원·달러 환율도 1300원 안팎으로 내려온 점도 부담을 줄이는 요인이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역대 최대인 150bp 이상으로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격차를 줄일 여지도 생겼다.


다만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날 발표 예정인 미국 CPI가 시장 예상에 부합해야 연준이 긴축 강도를 높이지 않을 명분이 된다. 2월 CPI 컨센서스는 전월 대비 0.5%, 전년 동월 대비 6.0%로 형성돼 있다. 결과적으로 이달 FOMC에서 연준의 금리 결정과 점도표를 확인해야 한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