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시그니처은행의 파산에 이어 크레디트스위스(CS)까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며 금융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연쇄 파산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에서는 정부 당국과 대형은행들이 합심해 중소은행 지원에 나섰지만 일부 경영진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들은 은행 파산이 공식화되기 직전 보유 주식을 대규모로 처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잘못된 경영으로 은행 부실을 초래한 고위 경영진에게 더 무거운 처벌을 부과해야 한다”며 처벌 강화 의지를 드러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정부 문서를 인용해 미국 지역은행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고위 경영자 6명이 사태가 촉발하기 전 꾸준히 보유 주식을 팔아치웠다고 보도했다. 경영진들이 1월 17일부터 3월 6일까지 매도한 회사 주식은 9만 682주로, 총 매도 규모는 1180만 달러(약 154억 원)에 이른다. 이들의 평균 매도가는 주당 130달러로 17일(현지 시간) 종가 23.03달러의 5배 수준 넘어선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을 세운 제임스 하버트 회장은 이 기간 450만 달러 규모의 주식을 처분했다. 이어 은행의 최고신용책임자(CCO), 최고경영자(CEO), 프라이빗자산관리 사장 등도 700만 달러 규모를 매도했다. 하버트 회장 측은 자선 활동과 부동산 계획에 따른 자금 마련 목적으로 주식을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뱅크런(현금 대량 인출 사태)과 주가 폭락으로 가장 먼저 파산한 SVB 은행의 전 회장인 그레그 베커 역시 무책임한 행동들이 도마에 올랐다. 베커 전 회장은 SVB가 파산하기 열흘 전인 지난달 27일 모회사 SVB파이낸셜 주식 1만 2451주를 약 360만 달러를 매각했다. 그는 이달 10일 SVB 파산 공식 발표 후 다른 경영진들과 함께 해고됐다. SVB 파산 사흘 뒤, 베커 전 회장은 아내 메릴린 바우티스타와 함께 하와이 마우이섬으로 휴양차 여행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열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부부는 운전사가 모는 검정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갔으며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일등석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부는 마우이섬 북서부 해안마을 라하이나 거리를 한가롭게 거닐었는데 이는 SVB 붕괴가 전 세계 금융 시장에 일으킨 혼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증권법에 따르면 은행은 내부자의 주식 거래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면제 받는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은행 고위 경영진들의 대규모 주식 매도가 즉시 눈에 띄지 않은 이유다. 은행들은 대신 거래 내역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보고하며 FDIC가 이들 사이트에 공개하지만 이는 SEC 신고보다 시장에서 반향이 적다는 것이다.
미국 법무부와 SEC는 SVB·시그니처은행에 대한 별도 조사에 본격 착수했다. 이번 조사에서 경영진 주식 매각 논란과 임직원 보너스 지급 등 파산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행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 SVB는 파산 후 압류 직전까지 직원들에게 연간 보너스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커 전 회장 역시 파산 직전 “기업을 하기 좋은 시기”라며 낙관적인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SVB·시그니처은행 경영진들을 겨냥해 “규제당국이 잘못된 경영과 과도한 위험 감수로 부실해진 은행 경영진의 보수를 환수하고 민사 처벌해 이들이 은행업에서 다시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게 쉬워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