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피부색이 권력이던 시대, 단지 뿌리만으로도 증오의 대상이 되던 한 소년이 목숨을 잃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에게만큼은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겪은 소년의 어머니는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감정인 '분노'를 얻는다.
'틸'(감독 치노늬 추크우)은 1955년 발생한 ‘에밋 틸 피살 사건’, 시카고에 살던 14세 흑인 소년 에밋 틸(제일린 홀)이 사촌을 만나기 위해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 머니 시로 여행을 갔다가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미국 남부 전역에 민권운동의 확산을 불러일으킨 사건을 어머니 메이미(다니엘 데드와일러)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극중 에밋 틸의 살인은 두 번 이뤄진다. 에밋 틸을 증오한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의해 한 번,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에 의해 두 번. 아들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본 시신의 상태에 관한 증언을 하러 재판에 섰지만 메이미에게 상황은 불리하게만 돌아갈 뿐이다. 재판에 참석한 배심원단은 모두 백인이며 정당한 판결을 내어주지도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가해자는 거짓말까지 일삼으며 피해자를 모독한다. 그렇게 어머니 메이미는 자식을 두 번 가슴에 묻게 된다.
작품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분노다. 이것이 실화라는 점, 이 사건의 가해자가 흑인 손님이 대부분인 가게의 주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인종과 상관없이 그 누구도 틸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은 경악스러운 부분들이다. 같은 인간임에도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존엄성을 이해받지 못하는 잔혹한 신들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렵다.
영화 속에서 '검토 중'이라며 곧 통과될 것 같았던 반 린치 법안이 현재에 다다르고 나서야 67년 만에 통과된 것도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단지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법으로 제정되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희생들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부서진 삶들은 오로지 피해자의 몫이었다는 사실은 지켜보는 이들을 분개하게 만든다.
메이미는 연설 중 "모두가 누릴 수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라고 외친다. 어쩌면 지금도 모두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세상에서 이 작품이 외치는 메시지는 이 대사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당한 세상 속에서 결국 자유는 개인이 아닌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는 것이며,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밟고 있는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우리 모두가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삶의 존엄성에 관한 본질적인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