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술 5년간 25兆 훔쳐도…죗값은 '집유'

['구멍난 법망' 핵심기술 샌다]
반도체·배터리·車 등 93건 적발
3건중 1건은 國富 키울 첨단기술
양형기준 낮아 '솜방망이 처벌'만

기사와 사진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국내 산업기술 유출 3건 중 1건은 국가핵심기술인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기술 유출 사건이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 등 국가핵심산업에 집중되면서 최근 5년 내 국내 기업 피해액(추산)만도 20조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기술 유출을 적발하더라도 법적 처벌은 대부분이 집행유예 등에 그쳐 양형 기준 현실화, 전문 재판부 설치, 침해 금액 산정을 위한 기관 설립 등 실질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산업기술 유출 적발 사례는 93건에 달했다. 국내 기업이 입은 피해 추산액은 25조 원에 이른다. 특히 빼돌려지는 산업기술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2차전지·자동차·정보통신·조선 등 국가 핵심 분야에 집중됐다. 최근 5년간 기술 유출이 가장 빈번했던 분야는 반도체(24건)로 이 가운데 국가핵심기술은 8건에 달했다. 신산업 분야로 부상하고 있는 2차전지(7건) 분야에서도 4건의 국가핵심기술이 국외로 유출됐다.


문제는 산업기술을 국외로 빼돌리는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 회사가 해당 산업기술과 연관이 없는 자회사 등에 국내 기업의 연구 인력을 취업시켜 기술을 빼가려는 이른바 ‘징검다리 이직’마저 등장했다. 이어 ‘조력자 심기’ 등까지 수법이 진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처벌 수위는 집행유예나 벌금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서울경제가 2021~2022년 산업기술 유출 사건(산업기술유출방지법·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1심 판결을 분석한 결과 7건 가운데 5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실형은 단 2건뿐이었으나 이마저도 처벌 수위는 징역 1년 6개월~2년 수준으로 현 양형 기준 최고형(징역 4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재판부는 양형 사유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거나 ‘피해 회사와 합의하거나 용서받지 못했다’고 밝히면서도 현실화되지 않은 피해 회사의 손해, 반성, 초범 등을 감경 사유로 들며 대부분 집행유예 등을 선고했다.


이재승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산업기술 유출 사범들은 초범이라도 엄히 처벌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인석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도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서는 구체적 피해 금액이 산정되지 않더라도 유출 행위만으로도 엄벌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 자체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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