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공익법인이 '같은 주식'을 '같은 날' 기증받았더라도 각각의 증여 사이에 시간적 선후관계가 확인된다면 비과세 순서를 고려한 출연자의 뜻에 따라 증여세 면제 기준을 서로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이 국세청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국세청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오뚜기 창업주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은 2015년 11월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밀알복지재단 등 공익법인에 오뚜기 주식 총 3만주를 출연했다. 교회에 1만7000주(지분율 0.49%), 미술관에 3000주(0.09%), 복지재단에 1만주(0.29%)씩이다. 구(舊)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에 따라 공익법인 등이 내국법인의 주식을 출연받은 경우 발행주식총수의 5%를 초과하는 경우에 해당하면 증여세를 신고해야 한다.
함 명예회장은 이들 단체에 주식을 기증하기 전인 1996년 이미 오뚜기재단에 17만주(4.94%)를 증여한 상태로 2015년 이들 단체가 받은 오뚜기 주식을 더하면 과세 면제 기준인 5%를 넘어서게 됐다. 이에 따라 남서울은혜교회 등은 증여세를 자진 신고했다. 다만, 밀알미술관 몫 가운데 2000주(0.06%)는 증여세 납부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총 2만8000주에 대해서만 신고가 이뤄졌다.
그러나 국세청은 상증세법 요건을 충족한 '성실공익법인' 밀알복지재단엔 별도의 기준을 적용해 증여세를 취소했고, 증여세 자진 신고에서 빠진 밀알미술관 몫의 나머지 2000주까지 과세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통보했다.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은 각각 증여세 73억여원과 13억여원을 부과받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함 명예회장이 사회 환원과 공익사업 목적으로 기부한 주식이기 때문에 과세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1, 2심은 각각 지분율을 다르게 판단해 증여세 부과 처분에 대한 상반된 판단을 내놨다. 그러나 대법원은 밀알미술관에 추가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봤다. 여러 공익법인이 같은 날, 같은 주식을 출연받았더라도 그 출연에 시간적 선후관계가 있다면 각각의 출연 시점을 기준으로 증여세를 물려야지 모든 법인이 동시에 주식을 받았다고 보고 과세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출연자가 증여세 과세 불산입 한도 등을 고려해 주식을 순차로 출연했음에도 출연이 같은 날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출연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각 주식이 동시에 출연된 것으로 의제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원심은 시간적 선후관계 등에 관해 심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먼저 주식을 기부받은 밀알미술관의 2000주는 비과세 대상으로 증여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