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촉발한 금융 불안 속에서 21~22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린다. 연준은 물가를 안정시키면서도 금융 불안은 잠재우는 동시에 경제 침체까지 피해야 하는 복잡한 딜레마에 놓여 있다. 이번 FOMC 결과에 따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최종금리도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이번 금리 인상기에서 가장 중요한 통화정책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 FOMC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은 전망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SVB 직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견조한 경제 지표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 등으로 연준이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할 확률은 40%를 넘었다. 그러나 SVB 사태 이후 금융 불안이 고조되면서 빅스텝 가능성은 제로(0)가 됐고 불과 열흘 사이에 금리 동결 확률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이후 유럽중앙은행(ECB)이 빅스텝에 나서면서 분위기는 베이비스텝(0.25%포인트 금리 인상)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21일 기준으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3월 FOMC에서 연준이 금리를 25bp 올릴 확률은 73.8%, 금리를 동결할 확률은 26.2%로 집계됐다. 오히려 시장에서는 미 연준이 예상을 깨고 금리를 동결한다면 시장 불안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리를 올리지 못할 정도로 시스템 위험이 심각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확률은 낮지만 금리 동결 이후 통화정책 전환을 공식화하면 단기적인 안도 심리는 가능하지만 더 큰 리스크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물가 안정이라는 중앙은행 목표이자 책무를 포기한다는 의미이고 SVB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고 확산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연준의 정책 신뢰도는 추락하는 동시에 취약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해 금융 불안이 확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시장을 뒤흔든 SVB·CS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인데도 금리를 더 올려야 시장이 안정된다고 보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최근 박기영 금융통화위원이 간담회서 언급한 금리 변화에 따른 ‘순수한 통화충격’과 ‘정보충격’과 관련이 있다. 순수한 통화충격은 기준금리가 바뀌면 조달비용 변화를 통해 소비·투자 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전통적인 정책효과다.
반면 정보충격은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효과다. 예를 들어 한은의 빅스텝을 두고 ‘실물경제가 생각보다 탄탄하다고 생각하나보다’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연준이 금리를 동결하거나 인하하면 그만큼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는 것으로 시장이 받아들이고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ECB가 CS 사태 등 변수에도 당초 예고한 대로 금리를 50bp 올린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시장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ECB는 지난 16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중기 물가목표(2%) 적시 달성을 위해 기준금리를 3.00%에서 3.50%로 올리는 등 주요 정책금리를 50bp 인상했다. 이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기자 회견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 상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시장의 긴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유로 지역의 물가 및 금융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가용한 정책수단을 필요시 언제든지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당일 유로화 환율은 큰 변동 없이 상승 마감했고 유로존 12개국 우량주 50개를 지수화한 유로스톡스50도 올랐다.
연준 역시 물가 안정을 우선하면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 대신 금융안정을 위해 별도의 유동성 공급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당시 한은이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리면서도 단기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유동성을 직접 공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은 관계자는 “연준도 정책수단을 구분해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 안정에 대응하되 금융 불안정성에 대해서는 유동성 공급을 통해 지원하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FOMC는 간과될 수 있었던 인플레이션 위험에 계속적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25bp 인상이 유력해 보인다”며 “지난주 ECB 금리 결정을 참고해 볼만한데 ‘무엇이든 하겠다’며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빅스텝 인상’을 통한 물가 안정을 동시에 강조했던 취지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로리 로건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이달 초 금융시스템 기능이 취약해질 경우 중앙은행과 당국이 조치를 취하는 것은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 연준은 공개시장조작, 기준금리, 지급준비금 세 가지 통화정책 수단을 가지고 정책을 조정한다”며 “금융안정 리스크는 별개의 수단으로 관리하고 금리 정책은 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추며 점진적 인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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