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느니 파산" 연초부터 회생신청 줄이어…하반기가 더 암울

■ '벼랑 끝' 개인·기업들 법원행 급증
◇한계 내몰린 소상공인
코로나 충격도 못 벗어났는데
하반기 경기 회복 불확실성 커
올 개인도산 역대 최고 전망도
◇기업 사정도 악화일로
법인 파산도 두달연속 100건대
건설업종 줄도산 우려 가능성↑
'2008년 금융위기 재연' 우려도

서울 명동거리 폐업 상점에 놓인 대출 광고물. 연합뉴스

연초부터 법원 문을 두드리는 개인 한계 채무자들이 급증하는 배경에는 ‘3고(高) 현상’에 따른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으로 하반기 경기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사라지면서 ‘재기한다’는 채무자들의 의지마저 꺾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부채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파산 신청이 회생을 크게 웃도는 현상마저 심화되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개인은 물론 기업도 재기보다는 ‘포기’를 선택하는 모습이다.


26일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2월 개인회생 신청은 각각 9216건, 9736건을 기록했다. 두 달 연속 증가하면서 1만 건에 육박했다. 빚을 갚지 못해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개인회생 신청이 증가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다. 지난해 월 평균 7000건대를 유지해오다가 9085건으로 급증했다. 같은 해 12월에도 8855건을 기록, 9000건대에 근접했다. 2019년 이후 꾸준히 감소세를 유지해오던 개인회생 신청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올 2월 개인 파산 신청도 3448건으로 전년 동기(3025건)보다 13.9% 느는 등 증가세로 돌아섰다.



새 학기와 봄 시즌을 앞둔 올 2월 서울 서대문구 아현가구단지의 한 폐업 점포에서 무인으로 가구들이 판매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법조계 안팎에서는 ‘예상되던 결과’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미 지난해부터 벼랑 끝의 채무자들이 한계에 내몰려 ‘가계 부실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경고가 여러 차례 나왔기 때문이다. 연 평균 4만 건대였던 개인회생·파산 신청이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이후 5만 건대로 급증하면서 시한(신청일로부터 30일) 내 파산·회생 선고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대법원 회생·파산위원회도 지난해 회의를 열고 개인·법인의 회생이나 파산 신청이 급증할 것을 대비해 전문 법관 확충, 회생법원 추가 설치 등을 권고했다. 개인회생·도산 신청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미 지난해부터 제기된 셈이다. 대법원은 이달 2일 수원회생법원·부산회생법원을 개원한 데 이어 추가 회생법원 설립, 전문 법관 충원 등을 논의하고 있다.


문제는 통상 연말에 몰리던 개인회생·파산 신청이 올해는 연초부터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익 감소라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영업자 등 개인들이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차츰 벼랑 끝으로 몰릴 수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 개인회생·파산 건수가 월 1만 건대로 치솟으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지방법원 파산부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코로나19 기간 중 정부의 대출 만기 연장이나 이자 상환 유예 조치로 버텨오던 소상공인들이 기댈 곳이 사라지면서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며 “하반기로 갈수록 도산 신청 건수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개인 도산 신청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곳간 사정이 악화일로를 걷기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올 2월 법인 파산 신청은 100건으로 전년 같은 시기(57건)보다 75.4%나 급증했다. 특히 올 1월 법인 파산 신청은 105건을 기록, 역대 1월 신청 기록 중 최고치를 나타냈다. 지난해 법인 파산 신청 수는 1004건으로 기업회생 신청(661건)을 크게 웃돌았다. 한계기업들 사이에서 ‘빚을 갚는 것보다 파산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파산이 회생보다 많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한 법조계의 관계자는 “산업계 내에서는 평균 부채 비율이 높은 건설 업종에서 줄도산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며 “현실화될 경우 건설 업체들이 무너지고 문을 닫았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건설 업종의 특성상 하도급 관계로 여러 기업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줄도산이라는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중소 건설사들의 회생·파산 신청이 이어진 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대우조선해양건설이 경영난으로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시공 능력 평가 순위 100위권에 포함되는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임직원들의 임금을 수개월째 미지급해 회생절차 개시 전까지 보전 처분과 포괄적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최근 중견 건설 업체 HN Inc(에이치엔아이엔씨) 역시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법원 심사 이후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에이치엔아이엔씨는 파산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서울회생법원도 최근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건설 업종을 포함한 분야별 회생·파산 통계를 분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업종별로 흐름을 사전에 파악해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로 이르면 올 하반기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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