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등 국내 대표 에너지 공기업들이 주주총회와 요금 인상 결정 등 굵직한 일정을 소화하는 운명의 한 주를 맞는다. 두 회사 모두 지난해 나란히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만큼 이번 주총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경영 쇄신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그동안 억눌려온 전기·가스요금의 인상 여부 결정도 예고돼 있다. 하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며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던 정부가 결국 ‘찔끔 인상’에 그칠 것으로 보이면서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 정상화도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전과 가스공사는 각각 28일과 29일 주총을 열고 지난해 재무제표와 사외이사 보수 등 주요 안건을 처리한다. 한전은 지난해 32조 6034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한전이 세웠던 국내 상장사 최대 적자 규모(5조 8465억 원)의 5배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한전은 지난해 4분기에만 10조 원 넘는 영업적자를 내며 7개 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가스공사도 사실상 환수가 어려운 민수용 미수금이 2021년 1조 8000억 원에서 지난해 8조 6000억 원으로 폭증한 상황이다. 미수금을 손실로 처리하지 않는 방식 덕에 적자가 흑자로 둔갑하면서 무배당 결정을 놓고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가스공사 소액주주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고요했던 한전과 가스공사 주총장이 올해는 현 정부와 경영진에 대한 성토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에너지 전문가와 주주들은 정부가 강제로 억누르고 있는 전기·가스요금을 올리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고 지적한다. 지금처럼 팔면 팔수록 밑지는 구조에서 벗어나야만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회사 측 역시 요금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23일 국회에 출석해 “올 1분기 실적도 조 단위 적자가 될 것”이라며 “전기요금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추가 요금 인상이 없으면 한전은 차입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한전 신용도에도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빚을 내 적자를 메우다 보니 한전의 부채 규모는 2020년 132조 4752억 원에서 지난해 192조 8047억 원으로 2년 새 45% 넘게 급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전이 발행한 채권이 시중의 돈을 빨아들이며 단기자금 시장을 교란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초 불거진 ‘난방비 폭탄 사태’ 이후 공공요금 속도 조절 목소리가 커지면서 요금 인상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요금 결정 시한(31일)을 앞두고 16일과 17일 요금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인상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기획재정부 간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에너지 비수기인 2분기마저 적정 수준 인상이 무산되면 한전과 가스공사의 경영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어 동결보다는 소폭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한전의 올 1월 전력 구입 단가는 ㎾h당 164.2원으로 지난해 평균 구입 단가(155.17원)를 이미 넘어섰다. 앞서 정부는 올 1분기 전기요금을 ㎾h당 13.1원 올리는 데 그쳤고 가스요금은 동결한 바 있다.
전기요금 정상화는 한전의 경영 부담을 줄이고자 일시 도입된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재개 여부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국내 11개 에너지 단체는 “SMP 상한제로 인해 생산한 전력을 제 가격에 팔지 못하게 되면서 손실액이 2조 원에 달한다”며 SMP 상한제 즉각 종료와 손실 보전을 주장하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SMP 상한제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공공 부담을 민간에 떠넘기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부당하다며 주민들이 한전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의 대법원 판결도 30일 예정돼 있다. 1심과 2심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이 나온 만큼 대법원에서도 이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요금 체계 변경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택용과 달리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수차례 개편에도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