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급감으로 인해 ‘악성 재고’로 몸살을 앓던 정보기술(IT) 세트(PC·가전·스마트폰) 업계의 재고 수준도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다. 공급망 내 주요 기업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온 강도 높은 재고 조정의 효과다.
주요 IT 세트 업체들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각종 전자 부품의 최종 수요처라는 점에서 악화된 디스플레이 패널,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인쇄회로기판(PCB) 등의 부품 수급 현황도 이르면 상반기 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7일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폰 채널 재고량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5개월 동안 2500만 대 줄었다. 분기별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의 10분의 1에 달하는 물량이 재고 정리로 소진된 것이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재고 조정 폭은 1900만 대로 역대 최대 수준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의 영향으로 재고 정상화에 속도가 붙었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지난해 14% 역성장했던 중국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올해 1월 들어 전년 동기 수준에 근접했다. 샤오미 ‘13시리즈’, 오포의 폴더블 스마트폰 ‘파인드N플립’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신제품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가전 업계에서도 급격한 재고 조정의 효과가 엿보인다. LG전자(066570)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재고자산회전율은 2021년 말 6.4회에서 지난해 말 6.6회로 높아졌다. 재고자산회전율은 매출액을 재고자산으로 나눈 수치로, 기업이 보유한 재고자산이 판매되는 속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회전율이 높을수록 재고자산이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가 빠름을 의미한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리오프닝의 영향으로 올해 들어 재고 상황이 조금 더 개선됐다”며 “국내 주요 가전사인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강도 높은 재고 조정으로 업계의 전반적인 수준보다 재고가 더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요만 살아나면 출하량이 빠르게 늘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진 셈이다.
세트 재고의 정상화에 따라 디스플레이와 전자 부품 분야의 실적 개선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대만의 디스플레이 업체 AUO의 펑솽랑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일부 TV 및 노트북 고객사들의 러시 오더가 있다”고 언급했다.
증권가에서도 스마트폰과 가전에 주로 탑재되는 MLCC, 카메라 모듈 등의 시장이 1분기 저점을 찍고 2분기 반등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기(009150)·LG이노텍(011070) 등이 주력으로 생산하는 부품이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1분기 실적이 연중 최저점일 것으로 예상한다”며 “지난해 4분기부터 재고 조정이 시작되면서 MLCC 유통 채널의 반등이 시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PCB 시장 역시 2분기까지 전년 대비 역성장을 이어가다 3분기부터 플러스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 업체 프리마스크는 글로벌 PCB 시장이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전년 대비 1.6%, 5.2%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