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계가 스마트 워치에 '손목' 주도권을 내주고 있다. 애플워치와 갤럭시워치 등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가 각종 편의 기능을 탑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되며 10~30대는 물론 40~60대 소비자까지 끌어모으면서저가 국산 시계에 이어 중간 가격대 명품 시계마저 유통 채널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고가 럭셔리 명품 시계들은 긴장하고 있다. 아직은 예물 수요 등에 힘입어 시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스마트워치로의 시장 재편에 대응하기 위한 새 전략을 짜는 분위기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스와치그룹이 운영하는 시계 브랜드 '티쏘'와 '해밀턴'은 지난해 더현대서울에서 철수했다. 60만~150만 원 가격대인 티쏘와 해밀턴은 특유의 스포티함을 내세워 젊은 고객 비중이 높은 더현대서울에 입점했으나 목표 매출을 달성하지 못해 퇴점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라가모·펜디·구찌 시계를 판매하는 수입 업체들도 올해 롯데백화점 주요 매장과 갤러리아 센터시티 등에서 방을 뺐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명품 수요 하락에 올해 들어 시계 매출이 본격적으로 역신장하고 있다"며 "공간이 한정된 탓에 '잘 되는' 브랜드만 남기는 개편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파텍필립·바쉐론 콘스탄틴·브레게 등 초고가 시계 브랜드가 한 곳에 입점해 있는 갤러리아백화점만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유지 중이다. 코로나19로 미뤘던 결혼식이 몰리며 예물 수요가 높아진 데 따른 효과로 풀이된다.
명품 브랜드를 단 시계의 인기가 시들해진 요인으로는 스마트 워치의 성장이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마트워치 시장규모는 1조 2674억 원으로 1조 1025억 원인 럭셔리 시계 시장을 앞질렀다. 전년 대비 신장률도 스마트 워치가 9.8%로 럭셔리 시계(5.5%)를 넘어섰다. 애플워치와 갤럭시워치 등 스마트 웨어러블과 샤오미 미밴드 등 액티비티 웨어러블을 포함한 스마트 워치 시장은 애플의 보급형 스마트워치인 '애플워치SE'가 출시된 2020년 럭셔리 시계 시장을 처음으로 제친 뒤 매년 격차를 벌려가고 있다.
스마트 워치의 입김이 세지자 위기 의식을 느낀 명품 시계 브랜드들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명품 중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가 2015년 애플과 손잡고 애플워치 에르메스 에디션을 내놓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스마트 워치의 입김이 세지자 위기 의식을 느낀 태그호이어, 몽블랑 등 전통 강자들도 스마트 워치 모델을 내놓으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9년 애플워치의 연간 출하량은 3070만 대로 스위스 시계 회사의 총 판매량(2110만 대)를 뛰어넘었다. 또 톰브라운과 메종키츠네 등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워치와 협업했다.
한편 국산 주얼리·시계 업체들은 스마트워치 틈새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랜드 오에스티(OST)는 2020년 4만 원대 스마트 워치를 선보였고, 제이에스티나와 로만손은 스마트 워치에 장착할 수 있는 스트랩을 별도로 판매하고 나섰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명품 수요가 줄고, 초고가와 스마트워치로 시계 시장이 양극화하면서 중가 브랜드 퇴출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