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사법부 장악’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사법개혁안 추진을 연기하기로 했다. ‘사법 개혁’에 반기를 든 국방장관 경질로 반대 시위가 격화하자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27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총리로서 대화를 통해 내전을 피할 기회가 있을 때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며 다음 달 말께 시작되는 크네세트(의회)의 다음 회기까지 입법 계획을 미루겠다고 밝혔다. 그는 “나라를 분열시키는 극단주의자들이 있다”면서 “나라를 갈라놓을 수 없으며 내전은 피해야 한다”고 연기를 결정한 배경을 전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대법원 권한 축소와 여당의 법관선정위원회 통제를 골자로 한 사법 개혁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네타냐후 총리의 의지는 굳건해 보였다. 사법 개혁을 공개 비판한 같은 리쿠르당 소속 의원인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도 해임했다. 하지만 해임 결정으로 네타냐후 총리는 강한 역풍을 맞았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등 주요 도시에서 사법개혁안에 반대하는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반대 시위가 격화됐고 최대 규모의 노동단체인 히스트라두트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란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온 갈란트 장관의 해임 결정은 이스라엘 정부가 (사법 개혁을 위해) 국익마저 내팽개칠 수 있다는 의미로 전달됐다”고 분석했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국민 통합을 위해 입법 절차를 즉각 중단해달라. 안보·사회·경제 모든 것이 위협받고 있다”고 촉구하는 등 정부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우파 연정 붕괴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가 이날 입법 ‘일시 중단’을 발표하자 시위의 불길은 일단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다만 사법 개혁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닌 만큼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이제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당부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입법이 실제로 완전히 중단된다면 진짜 대화를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며 “다만 이전에도 (네타냐후의 거짓말을) 경험한 적이 있어 속임수가 없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스라엘의 내부 혼란을 우려하던 미국도 이번 결정에 환영 의사를 밝히며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화는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발판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달 뒤 사법개혁안을 재논의해야 하는 네타냐후 총리가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법부 무력화’ 비판에도 법 개정을 강행하다 전국적인 혼란을 초래한 개혁안을 그대로 다시 추진하기에는 이미 정치적으로 적잖은 타격을 받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입법 중단을 선언하면 그의 우파 연정이 무너질 우려도 있다. 연정의 핵심 인물이자 가장 강력한 극우 인사로 꼽히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연정 탈퇴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개혁안 추진을 압박하고 있다. 내부 갈등도 여전하다. 블룸버그통신은 “27일 주요 도시에서 입법 강행을 촉구하는 친정부 집회가 열렸다”며 “이스라엘의 4월은 휴일로 가득 차 휴지기를 가질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타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