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부당하다며 사용자들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30일 박모 씨 등 87명이 한전을 상대로 낸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한전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약관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누진제는 전기사용자 간에 부담의 형평이 유지되는 가운데 전기의 합리적 배분을 위해 도입됐고, 책정된 누진별 구간요금이 전기사업법의 목적과 취지에 반하는 정도로 사용자의 이익을 제한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박씨 등은 2014년부터 "한국전력이 위법한 약관을 통해 전기요금을 부당 징수한다"며 한전을 상대로 적정 요금 차액 반환을 요구해왔다.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 조항'은 공정성을 잃었으니 무효라는 약관규제법 6조가 주된 근거다. 1, 2심은 모두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보고 소비자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전을 상대로 한 누진제 관련 소송은 총 14건으로 이 가운데 7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소송을 이끄는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법무법인 인강)다. 법원은 전기요금 약관이 사용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하지 않고, 필수 공공재인 전기 소비의 절약 유도 등 사회정책적 목적상 필요하다며 대체로 누진제의 정당성을 인정해왔다. 이번에 대법원 결정에 따라 나머지 관련 소송에서도 법원의 기존 판단을 뒤집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요금이 비싸지는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3년 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이듬해 말 처음 도입됐다. 이후 12단계, 9단계, 6단계 등 여러 차례의 누진 구간 조정을 거쳐 2016년부터 3단계 체계로 재편됐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여름철마다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불만을 낳고 있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약관법 위반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문제되는 약관 조항이 고객에게 다소 불이익하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약관 작성자가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해 계약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해 형평에 어긋나는 약관 조항을 작성·사용함으로써 건전한 거래질서를 훼손하는 등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줬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