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대출자 10명 중 6명이 이미 3개(기관·상품) 이상의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라는 점은 사실상 더 이상 추가 대출을 받기 어려운 한계 차주라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이미 여러 금융기관에서 한도를 채워 돈을 빌렸을 가능성이 높으며 대부 업체 및 사채시장에까지 손을 벌렸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9월부터 정부 및 금융권의 코로나19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고 대출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경우 이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3일 한국은행이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다중채무자일수록 대출금리가 오르면 일반 자영업 대출자보다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지난해 4분기 말 변동금리 대출 비중 추정 값(72.7%)을 적용해 자영업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 증가분을 추산한 결과 일반 자영업 대출자는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1인당 평균 연 이자는 60만 원, 전체 이자액은 1조 9000억 원 불어난다. 대출금리가 1.50%포인트 오를 경우 1인당 평균 연 이자는 362만 원까지 늘어난다. 반면 다중채무자의 경우 대출금리 0.25%포인트 인상 시 1인당 평균 연 이자 증가액은 76만 원으로, 1.5%포인트 인상 시 454만 원으로 감당해야 할 이자 규모가 더 커진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오른 기준금리가 대출금리에 이미 반영됐다고 가정할 경우 다중채무자가 이미 부담한 이자 규모는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8월 이후 올 초까지 기준금리 인상 폭(3.00%포인트)만큼 대출금리가 올랐다고 가정하면 일반 대출자가 감당해야 할 추가 이자는 724만 원, 다중채무자는 908만 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결국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갚기도 버거워진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이 다중채무자가 됐다면 이미 대부 업체나 사채시장에서까지 돈을 빌렸다는 의미”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소상공인은 경기에 제일 민감할 수밖에 없는 차주”라면서 “경기 악화로 매출이 하락하고 대출 이자 부담까지 겹치면 자영업자 중 다중채무자부터 가장 빠르게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정부 및 금융권의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로 하루하루 버티던 자영업자들이 해당 조치가 9월부터 종료될 경우 낭떠러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9월 기존에 해오던 일률적인 만기 연장과 달리 금융권 자율 협약으로 전환한 후 최대 3년간 만기 연장과 최대 1년간 상환 유예를 추가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만기 연장 이용 중인 차주는 53만 4000명이며 대출 규모는 124조 7000억 원이다. 원금 및 이자 상환 유예를 신청한 차주는 3만 8000명으로 16조 7000억 원 규모다.
여기에다 코로나19 이후 정부가 실시한 긴급 대출 등의 경우 만기 연장 대상이 아니어서 당장 이달부터 만기 및 원리금 상환 일정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20년 4월 기업은행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출(신용등급 1등급 3000만 원, 이하 등급 3000만 원 미만)을 실시한 바 있는데 이달로 3년 만기가 도래해 일시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장을 위해서는 은행 자체 심사 기준에 따라 은행이 수용할 경우 저이자가 아닌 일반 이자로 연장하게 된다.
일단 당국은 9월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 종료 이후에도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연착륙 방안(새출발기금, 금융회사 자체 채무 조정 프로그램 등)을 마련한 만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캠코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신청자는 2만 1544명, 채무액은 3조 2402억 원이다. 원금 감면 없이 금리와 상환 기간을 조정해 채무 조정을 해주는 ‘중개형 채무 조정’을 통해 3857명(채무액 2561억 원)의 채무 조정을 확정했으며 평균 이자율 감면 폭은 약 4.4%포인트다. 새출발기금이 부실 채권을 매입해 원금 감면을 해주는 ‘매입형 채무 조정’의 경우 603명(채무 원금 395억 원)이 약정을 체결했고 평균 원금 감면율은 약 74%다.
다만 이와 관련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3고 현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코로나 이전 대출과 코로나 당시 대출 상환이 한꺼번에 겹치면 소상공인들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개인에 대한 직접 대출을 확대하거나 금융권에서 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도 가산금리 동결 및 인하 등의 조치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금리 상황에서 중기 및 소호 대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의 중기 대출(소호 대출 포함)과 소호 대출 잔액은 각각 602조 3887억 원, 314조 51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증가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보증서 담보 개인사업자(소호) 대출 평균 금리는 4.64~5.45%로 1년 전(2.22~3.12%)와 비교하면 대출금리는 2%포인트 넘게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