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대항해, 4차산업혁명 시대와 보험

허창언 보험개발원장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1498년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으로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글로벌 해상무역을 활성화시켜 우리 세계관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여기에 큰 도움을 준 것이 보험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5세기 당시 길이 30m의 작은 배에 의지해 대서양과 인도양을 오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떠난 배 중 절반 이상이 거친 파도에 좌초돼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해상무역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보험 제도다. 다수의 사람이 손실을 분담하는 구조를 통해 안심하고 많은 배를 출항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항해시대에 해상 모험가들이 있었듯 지금은 신기술 분야 곳곳에서 모험가들이 꿈을 펼치고 있다. 인공지능(AI), 친환경 에너지, 신의료기술 등 4차 산업혁명의 대항해를 펼쳐 나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완전자율주행이 대중화된 후에 누가 자동차 보험에 가입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이미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을 개정해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먼저 보상하고, 사고 원인이 자율주행차 결함이라면 이미 지급한 보험금을 자동차 제조사로부터 받아내도록 했다. 결국 자동차 제조사도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기술 발달에 따른 예상치 못한 사고는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다. 지난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저장장치에서 발생한 화재로 큰 사회적 혼란이 생겼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또 현재 각광받는 AI와 관련해서도 해킹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를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4차 산업혁명 역군들이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장기간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 와중에 회사가 감당하기 힘든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신기술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하거나 피해를 보상해주는 수단이 있을 때 비로소 그 산업이 안정화된다. 보험이 대항해시대 모험가들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게 지원했듯이 오늘날의 보험은 새로운 위험으로부터 회복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배를 세계시장에 용기 있게 띄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 삶에 들어온 신기술은 보험 소비자에게도 이익을 가져다준다. 당장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만 하더라도 운전 성향 데이터를 바탕으로 저렴한 자동차보험을 개발·판매하고 있다. 건강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해주는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는 보험회사의 위험 관리를 용이하게 해 보험료를 낮출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보험이 신기술 확산을 지원하고 이것이 다시 보험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