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에 도전하는 중소기업들이 기업 가치 산출 시 비교군으로 삼는 유사 기업 그룹(피어그룹·Peer) 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특히 ‘업계 1호’ 상장을 노리는 기업일수록 기업가치(밸류에이션) 산출 과정에 거품이 없는지 자기검열을 하는 분위기다. 금융 당국의 심사가 갈수록 까다로워지면서 이례적으로 상장 직전 낙마하는 사례까지 나온 탓이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와인 유통사 1호 상장에 도전하는 나라셀라는 피어그룹으로 글로벌 위스키 제조사 페르노리카, 미국 와인 제조사 덕혼포트폴리오 등 해외 기업 7곳을 선정했다. 돔 페리뇽과 헤네시로 유명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주관사를 맡은 신영증권(001720)은 “나라셀라는 고가의 와인유통을 주로 하는 회사”라며 “(와인 유통은)명품 유통사업과 맞닿은 측면이 많아 (LVMH도)유사회사로서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나라셀라는 1990년 설립된 와인 수입·유통 업체로 약 120개 브랜드의 와인 1000여종의 독점 공급권을 가지고 있다. 국내 경쟁자로는 금양인터내셔날, 신세계L&B, 아영FBC 등이 있지만 모두 비상장사여서 유사 업체를 해외에서 찾은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나라셀라가 하이트진로(000080)·롯데칠성(005300) 등 국내 기업 2곳도 피어 그룹에 포함 시켰는데 이들의 와인 매출은 각각 1.9%, 3.6%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재무적인 면을 제외하면 나라셀라와 이들 기업간 유사성은 ‘음료 제조업’이라는 기업 분류 기준밖에 없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와인 유통 기업 상장이 전례가 없기 때문에 기업 가치를 보수적으로 산출하기 위한 기술적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라셀라는 기업 가치 평가를 위해 주가수익비율(PER) 비교 방식을 사용한다. 해외 피어 그룹의 평균 PER은 25.21배인 반면 국내 피어 그룹의 PER은 15.27배로 절반 가까이 낮다. 이에 최종 평균 PER은 23배가 된다. 나라셀라가 PER이 낮은 국내 기업을 일부러 포함시켜 조금이라도 PER을 낮추려고 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올 처음으로 ‘따상상(시초가를 공모가 두 배로 형성해 상한가를 기록한 뒤 다음날 연속해 상한가)’을 신화를 쓴 꿈비(407400)의 사례도 비슷하다. 당시 꿈비는 국내 유아 가구 브랜드 1위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시디즈(134790)·퍼시스(016800)·오하임아이엔티(309930) 등 일반 가구 업체만 피어그룹으로 선정했다. 꿈비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매출 비중이 커 평균 PER이 높은 이커머스 기업을 피어그룹에 포함시킬 수도 있었지만 유아가구 업계 최초 상장이라는 점을 신중히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내 1호 이커머스 상장사에 도전했던 오아시스는 기업 가치 산정 기준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당시 오아시스는 기업 가치(EV)를 매출액(Sales)으로 나눈 지표를 밸류 판단 기준으로 정했는데, PER을 적용할 경우 피어그룹의 PER이 100배를 넘어가게 되는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오아시스는 이커머스 시장 자체가 얼어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평가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IB업계는 1호 상장 엑셀러레이터(AC)에 도전하다 철회했던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사태를 반면교사 삼겠다는 분위기다. 블루포인트는 지난해 12월 피어그룹 회사를 7곳으로 제시했지만 증권 신고서 정정 과정에서 3곳으로 줄였다. 피어그룹 변동으로 기업 가치도 소폭(1.27%) 감소했다. 하지만 기업 가치의 적절성을 끝내 설득하지 못하고 재차 정정 요구를 받다가 결국 상장을 철회했다. 익명을 요청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업계 최초 상장에 민감한 금융 당국의 입장은 십분 이해한다”면서도 “모든 증권사들이 블루포인트 사례에 적잖은 당혹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업계 최초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로는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 탄소배출권 전문기업 에코아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