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잃어버린 10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세계은행(WB)의 경고가 나왔다.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생산성 저하, 투자 위축이라는 세 가지 성장 저해 요인이 코로나19 및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악재를 만나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세계무역 촉진 등의 ‘초국가적 노력’이 있어야만 이 같은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3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지난달 말 발간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평균 잠재 경제성장률이 2030년까지 연 2.2%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30년 만의 최저치다. 전 세계 평균 잠재 성장률은 2000~2010년 연 3.5%, 2011~2021년 연 2.6%였다. 인더밋 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잃어버린 10년이 세계경제에 찾아오고 있다”고 우려했으며 아이한 코세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경제 발전의 황금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고 평했다.
◇생산가능인구 65%서 정체=세계은행은 “성장률 저하의 절반 이상은 고령화로 대표되는 인구통계학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며 생산가능인구(15~64세) 증가세의 둔화를 주요 성장 저해 원인으로 꼽았다. 전 세계의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1981년 59.1%에서 2010년 65.3%로 늘었지만 현재는 65% 전후에서 정체된 상태다. 특히 선진국의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가파른 고령화로 지난해 63.9%에서 2030년 61.9%로 뚜렷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노동력 부족을 야기할 뿐 아니라 정부의 재정 여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연금 개혁 시도가 광범위한 반대에 직면한 것은 인구통계학적 요인이 각국에 얼마나 큰 경제·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추락하는 노동생산성=문제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의 악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노동생산성 향상까지 정체됐다는 점이다. 전 세계 총요소생산성(노동·자본 투입을 제외한 경영 혁신, 기술 개발이 창출하는 부가가치) 상승률은 2000~2010년 1.4%, 2011~2021년 1%, 2022~2030년 0.8%로 꾸준히 감소할 것이라는 게 세계은행의 예측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저하와 노동자 처우 변화 등이 선진국·신흥국 할 것 없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례로 포춘지에 따르면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지난해 전년 대비 4.1% 하락해 1948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미국 최대 구인·구직 업체 집리크루터의 줄리아 폴락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으로 임금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해고와 재취업 주기가 단축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 권태가 심해졌다”고 짚었다.
◇신흥국 투자 반 토막=생산성 향상의 필수 조건으로 꼽히는 투자까지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의 투자 증가율은 2000~2010년 평균 9.4%에서 2011~2021년 4.8%로 거의 반 토막 났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여파로 투자가 1.5% 감소했으며 중국을 빼면 감소폭이 8.2%로 더욱 커졌다.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심화한 공급난, 높은 부채 비율,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금리 정책 때문에 자금 조달 조건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며 복합적 요인 탓에 향후 몇 년간 투자심리 위축이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적 악순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 은행권 불안이 번진 것은 세계경제에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은행은 “또 다른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글로벌 성장 전망 둔화는 더 뚜렷해질 것”이라면서도 “향후 10년간의 경제성장을 이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반전’의 가능성도 제시했다. 전 세계 무역 확대 정책, 여성 등 비경제활동인구의 노동시장 진입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