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도 달 여행 간다는데…제약사의 우주사업, 뜬 구름 아닌 이유 [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보령, '액시엄스페이스'에 대규모 투자 이어 합작사 설립 추진
머크·릴리·아스트라제네카 등 빅파마들, 우주공간서 신약 연구
우주탐사 기간 길어지며 '우주의학' 분야 새 먹거리로 떠올라

탑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팬이 만든 '디어문' 프로젝트의 탑승권 합성 사진을 공유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여기 어때?" 개인적으로 주식투자 수익률이 높지 않은 데도 바이오부 취재기자라는 이유로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합니다. 바이오업종은 개인 투자자의 정보 접근성이 유독 낮은 분야죠, 전문지식 없이는 공시 내용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허다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위 '카더라' 식으로 도는 소문을 듣고 와선 '지금 들어가도 될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얼마 전까지 초기 신약개발에 주력하는 코스닥 상장업체나 비상장사가 이런 류의 대화에 자주 거론됐다면, 최근 들어 전통제약사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전통제약사들은 신약 기술수출 등 어지간한 호재에도 상승 폭이 크지 않아 '무거운 주식'으로 통하는데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장기화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매력이 부각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최근 전통제약사 한 곳이 바이오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위장약 '겔포스'로 잘 알려진 보령(003850)인데요, 새 먹거리로 우주산업을 낙점한 데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보령의 전신은 충남 보령 출신 김승호 명예회장이 1957년 종로에 창업한 보령약국입니다. 1966년 보령제약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의약품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한해 7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제약사로 자리매김했죠. 2005년부터 17년 연속 매출 신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안정적 성장세를 지속 중입니다. 그러던 보령이 지난해 주주총회 때부터 파격적 행보로 주주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의약품을 넘어 헬스케어 산업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사명에서 제약을 떼더니 신사업의 활동무대로 우주 진출을 선언한 겁니다. 대다수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진출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당히 이례적이죠? 공교롭게도 오너 3세 김정균 대표가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전에 없던 변화가 시작된 데 알짜 자회사로 평가받는 보령바이오파마 매각까지 추진 중이어서 이를 지켜보는 주주들의 심경은 더욱 복잡해 보입니다.



액시엄스페이스의 세계최초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 '액시엄스테이션'. 사진 제공=보령

보령은 '케어 인 스페이스'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우주 헬스케어 사업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 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 건설사인 액시엄스페이스에 두 차례에 걸쳐 총 6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협력관계를 돈독히 했고, 얼마 전 주총에서는 조인트벤처 설립을 공식화했습니다. 오는 5월 합작사를 세우고 이를 통해 향후 액시엄이 우주정거장을 세우는 지구 저궤도(Low Earth Orbit) 상에서 다양한 사업을 함께 추진한다고 해요. 보령의 파트너사인 액시엄은 지구 저궤도에서 오는 2030년 퇴역 예정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대체할 인류 최초의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 ‘액시엄스테이션(Axiom Station)’을 개발 중입니다. ISS의 수명이 만료되면 액시엄 세그먼트를 분리해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차세대 우주정거장으로 활용하며 일반인 대상의 우주호텔 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죠. 2025년 NASA의 아르테미스 3호가 달 남극에 착륙할 때 우주인들이 입을 새 우주복 ‘AxEMU(Axiom Extravehicular Mobility Unit)’를 개발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 핫한 기업이 한국 기업 및 정부와 추진하는 모든 사업을 보령과의 합작사를 통해 진행하겠다고 선언한 점은 분명 긍정적 신호로 평가되는데요, 다만 아직 사업안이 구체화되지 않았고 언제부터 수익 창출이 가능할지 장담하기 힘들다 보니 일부 주주들이 불만을 품는 것도 무리만은 아닌 듯 합니다.


김 대표는 지난해 개인 일정을 이용해 액시엄 회장과 함께 한국천문연구원을 방문하는가 하면, 아시아 미세중력학회 연자로 참석해 우주 사업에 투자하게 된 배경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류에게 꼭 필요한 회사가 되기 위한 선택'이란 김 대표의 발언은 보령이 우주 사업에 얼마 만큼 진심인지 느껴지게 했죠.



액시엄스페이스의 차세대 우주복 'AxEMU'. 사진 제공=보령

왜 하필 우주일까요? 우주는 지구와 달리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주공간에 장기간 체류하다 보면 근력이 약해지고 골밀도가 감소하는 등의 신체변화를 겪는 것도 그러한 환경 특성 때문이죠. 과학계에서는 민간 우주 개척이 본격화함과 동시에 미소중력(microgravity) 환경에서 일어나는 신체변화와 극복 방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약바이오산업 측면에서는 우주공간이 지구보다 신약개발에 유리하다는 점에 주목할 만 합니다. 중력이 거의 없다보니 약물을 만들 때 생성되는 단백질 결정이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아 보다 균질하면서 고순도의 약물을 획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상 10~15년 가량 소요되던 신약개발 기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해요. 실제 미국 머크(MSD)와 일라이 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빅파마들은 일찌감치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찾아 의약품연구를 수행해 왔습니다. 머크는 무중력 환경에서 균질한 결정의 현탁액 제조 원리를 터득해 블록버스터 항암제 ‘키트루다’를 피하주사 제형으로 만드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지난달에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ISS로 향하는 스페이스X 드래곤호에 바이오의약품 실험자료를 실어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BMS는 우주에서 자란 고품질 결정체의 구조를 분석해 분자를 안정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성공할 경우 더 많은 치료용 단백질을 체내에 효과적으로 전달해 치료 효과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걸로 기대됩니다. 빅뱅 출신 탑이 탑승 멤버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던 스페이스X의 달 관광 프로젝트 ‘디어문’와 같이 민간인들의 우주여행이 일반화되고 우주탐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주의학'을 새 먹거리로 삼으려는 기업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우주' 사업이 조금 친근해지셨나요? 물론 우주산업의 흥행과 주주들의 관심사인 주가 향방은 별개입니다. 향후 보령의 투자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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