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근로자 사망사고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첫 적용으로 관심을 모은 첫 재판에서 원청기업 대표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그동안 경영계가 중대재해법을 두고 엄벌만능주의에 기댄 과도한 형사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던 우려가 무색한 상황이다. 이번 판결은 하청 근로자의 사고 책임을 원청에 제대로 묻지 못하는 법 체계를 바꾸자는 노동계의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6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대표에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대표에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날 재판은 작년 5월 고양시 요양병원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은 하청근로자의 사고 책임을 원청에게 얼마나 물을 지가 관심이었다.
특히 이날 재판은 작년 1월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첫 판결이란 점에서 주목됐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의 안전관리의무를 따려 형사처벌하는 법이다.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상 벌금형이 가능하다.
그동안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을 두고 과도한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동시에 법 조항이 모호해 현장에서 준수가 어렵다고 토로해왔다. 경영계는 지난달 검찰이 중대재해법 사고기업의 첫 오너 기소를 근거로 이 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더 높였다. 법조계에서는 기업이 오너의 형사처벌은 막겠다는 기류가 강하다며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날 판결로 경영계의 우려는 과도했다는 지적이 노동계에서 제기될 전망이다. 동시에 중대재해법은 더 강한 실효성 비판에 휩싸일 수 있다. 노동계는 하청 근로자 사고 책임을 원청이 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처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 법의 필요성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기 전 정부와 국회는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했다. 2020년부터 이 법을 통해 유해 위험 작업의 도급을 제한하거나 도급인의 책임이 강화됐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업체도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는 등 노동계의 기대 보다 낮은 처벌이 여전해서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지난 2월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서 “(그동안)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근로자가 죽거나 다치면 사업주와 행위자를 산안법 위반죄로 처벌했지만 실제 처벌은 무겁지 않았다”며 "하지만 경영구조가 다층화된 대규모 기업은 중대재해 책임을 상위 경영진에게 묻는 것이 어려운 모순적 상황이 여전했다”고 말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개정 산안법이 (2019년) 시행 된 이후 안전보건의무위반치사죄로 기소된 법인 사업주에 대해 선고된 벌금액은 평균 692만원에 불과하다. 산안법 167조 벌칙 조항을 보면 도급인이 안전보건조치를 어겨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를 내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하다. 실제 재판에서는 벌금이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 것이다. 권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하는 게 목적”이라며 “이는 현행 형사법 체계 아래서 법인기업에 의한 중대재해 발생을 억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은 제정 이유로 2018년 12월 비정규직 근로자 김용균씨 목숨을 잃게 한 태안화력발전소 압사사고를 비롯해 2020년 4월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사고, 같은 해 5월 A중공업 아르곤 가스 질식 사고 등을 열거했다. 하지만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기업은 2021년 11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달 태안화력발전소 원청 대표도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산업안전 대책 방향을 사고 후 처벌 보다 사고 전 사업장 스스로 안전체계를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꿨다. 1월 중대재해법령 개선 태스크포스를 발족하고 6월까지 개선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