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5일(현지 시간) 미국 권력 서열 3위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로스앤젤레스 회동을 놓고 정면으로 대립했다. 지난해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에 이어 올해 선출된 매카시 의장까지 연이어 차이 총통과 만나자 중국은 미국이 ‘레드라인’을 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은 이날 회동을 앞두고 대만 주변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한 무력시위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카시 의장은 이날 로스앤젤레스 인근 로널드레이건대통령 도서관에서 경유 형식으로 미국을 방문한 차이 총통과 만났다. 1979년 미국과 대만이 단교한 후 44년 만에 미국 땅에서 진행된 양국 최고위급 만남으로, 대만 총통이 미국 현지에서 정부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매카시 의장은 회동 후 트위터 글에서 “대만에 무기 판매를 지속하고 해당 판매가 제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무역과 기술 등을 비롯한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이 총통은 매카시 의장의 환대에 “캘리포니아 햇살처럼 따뜻하다”고 감사를 표하면서 “우리는 함께할 때 더 강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매카시 의장도 “대만인과 미국인의 우정은 자유 세계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화답하며 대만을 향한 빠른 무기 지원을 촉구했다. 이날 회동에는 피트 아길라 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 10여 명도 동석해 대만에 대한 미 의회의 초당적 지지를 보여줬다.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배석하는 일부 의원들에게 미리 편지로 참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으나 만남을 막지 못했다.
차이 총통은 이번 순방 기간 미 의회 주요 인사들과 두루 접촉했다. 앞서 뉴욕 경유 때는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와 댄 설리번(공화), 조니 언스트(공화), 마크 켈리(민주) 상원의원과 비밀리에 회동했다. 이들은 모두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으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경제적으로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이 이끄는 미 하원 외교위 대표단이 6일 대만을 찾는 등 미 의회와 대만 간의 교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미국과 대만의 밀착에 중국은 격분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등 5개 기관은 6일 동시에 성명을 발표하며 결연한 대응 조치를 예고했다. 중국 외교부는 담화문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며 중미 관계에서 넘어서는 안 될 첫 번째 ‘레드라인’”이라며 “대만 독립은 양안 평화·안정과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으며 또한 막다른 길”이라고 규정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도 같은 날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 정부의 ‘3호 정치 인물(권력 서열 3위)’인 매카시 하원의장의 행동은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 측의 약속을 심각하게 어기고 대만 독립·분열 세력에 심각하게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고 비판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제어하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가 지른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지난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때처럼 중국의 위협적인 군사작전이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군의 두 번째 항모인 산둥함은 전날 대만을 거쳐 이날 현재 대만 동부 해안에서 약 200해리(370㎞) 떨어진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광둥성 해사국은 항행 안전 정보를 통해 7일 남중국해 주장강 하구에서의 실탄 사격 훈련을 공지했다. 이 지점은 대만 서남부 지역에서 600㎞가량 떨어진 곳이다. 대만과 마주한 푸젠성 해사국은 대만해협 북부·중부에서 합동 순항·순찰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긴밀해지는 미국·대만 관계가 중국에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대만을 세계 양대 강대국 간 관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화약고로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