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빨라진다…빅파마들도 꽂힌 '우주 헬스케어'

■ [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보령, '액시엄스페이스'에 대규모 투자 이어 합작사 설립 추진
머크·릴리·아스트라제네카 등 빅파마들, 우주공간서 신약 연구
우주탐사 기간 길어지며 '우주의학' 분야 새 먹거리로 떠올라

액시엄스페이스의 세계 첫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 '액시엄스테이션'. 사진 제공=보령

위장약 ‘겔포스’로 잘 알려진 보령(003850)이 새 먹거리로 우주산업을 낙점한 데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1957년 보령약국이 모태인 보령은 1966년 보령제약으로 이름을 바꾸고 의약품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2005년부터 17년 연속 성장세를 지속한 결과 한해 7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제약사로 자리 잡았죠.


그런데 지난해 3월 사명에서 제약을 떼더니 일명 ‘케어 인 스페이스’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우주 헬스케어 사업 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 건설사인 액시엄스페이스에 두 차례에 걸쳐 총 6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협력관계를 돈독히 했고 얼마 전 주총에서는 조인트벤처 설립을 공식화했죠. 오는 5월 합작사를 세우고 향후 액시엄이 우주정거장을 세우는 지구 저궤도(Low Earth Orbit) 상에서 다양한 사업을 함께 추진한다고 해요.


보령의 파트너사인 액시엄은 지구 저궤도에서 오는 2030년 퇴역 예정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대체할 인류 최초의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 ‘액시엄스테이션(Axiom Station)’을 개발 중입니다. ISS의 수명이 만료되면 액시엄 세그먼트를 분리해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차세대 우주정거장으로 활용하며 일반인 대상의 우주호텔 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죠. NASA와 협력을 통해 차세대 우주복 ‘AxEMU’를 개발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한국 기업 및 정부와 추진하는 모든 사업을 보령과 합작사를 통해 진행하겠다고 선언한 점은 분명 긍정적 신호로 평가됩니다. 다만 아직 사업안이 구체화되지 않은 데다 당장의 수익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일부 주주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알짜 자회사인 보령바이오파마의 매각을 추진 중인 것도 주주들의 불만을 키우는 요인이죠.


왜 하필 우주일까요? 우주는 지구와 달리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주공간에 장기간 체류하다 보면 근력이 약해지고 골밀도가 감소하는 등의 신체변화를 겪는 것도 그런 환경 특성 때문이죠. 과학계에서는 민간 우주 개척이 본격화함과 동시에 미소중력(microgravity) 환경에서 일어나는 신체 변화와 극복 방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약바이오산업 측면에서는 우주공간이 지구보다 신약개발에 유리하다는 점에 주목할만 합니다. 중력이 거의 없다보니 약물을 만들 때 생성되는 단백질 결정이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아 보다 균질하면서 고순도의 약물을 획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상 10~15년 가량 소요되던 신약개발 기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해요.


실제 미국 머크(MSD)와 일라이 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빅파마들은 일찌감치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찾아 의약품연구를 수행해 왔습니다. 머크는 무중력 환경에서 균질한 결정의 현탁액 제조 원리를 터득해 블록버스터 항암제 ‘키트루다’를 피하주사 제형으로 만드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지난달에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ISS로 향하는 스페이스X 드래곤호에 바이오의약품 실험자료를 실어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BMS는 우주에서 자란 고품질 결정체의 구조를 분석해 분자를 안정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성공할 경우 더 많은 치료용 단백질을 체내에 효과적으로 전달해 치료 효과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걸로 기대됩니다. 제약사의 우주 사업 진출이 뜬구름 잡는 얘기만은 아니란 얘기죠.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보령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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