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는 매년 4월만 되면 크게 흔들린다. 12월 결산 법인의 배당이 4월에 몰려 있어 이자·배당 지급 등 본원소득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내기 때문이다. 이때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계절적 요인으로 인한 일시적 적자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이미 1·2월 경상수지가 47억 달러 적자다. 본원소득수지 적자에도 충격에 대한 완충 역할을 했던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가 이미 수개월째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 거기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역대 최대인 1.50%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태다. 이달 중순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의 외국인 배당금 지급이 본격화되면 환율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9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14일 삼성전자·우리금융지주를 포함해 기아(17일), 현대차(21일), LG화학(26일) 등 국내 주요 기업의 배당 지급이 본격화한다. 국내 상장기업들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외국인을 포함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면 경상수지 구성 항목 중 하나인 본원소득수지 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
본원소득수지는 1980년 통계 작성 이후 줄곧 연간 적자를 내다가 2011년 처음 흑자 전환했다. 이후 매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0.5% 수준의 흑자를 내왔는데 4월만 되면 배당급 지급으로 30억~50억 달러 규모의 적자가 생겼다. 본원소득수지는 2021년 4월(-32억 3000만 달러)과 지난해 4월(-30억 2000만 달러)에도 30억 달러 안팎의 적자를 냈다.
문제는 본원소득수지 적자로 외환시장의 불안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 부진으로 상품수지가 5개월째 적자, 해외여행 확대로 서비스수지마저 10개월째 적자다.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상품수지·서비스수지·본원소득수지가 모두 적자면 달러 유출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 주주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과정에서도 환전 수요가 늘면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할 수 있다. 지난해에도 원·달러 환율은 4월에만 3.6% 올랐다.
한은은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가 44억 달러 적자를 예상했는데 이보다 확대될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4월 경제동향’에서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며 경기 부진이 지속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기존의 수출 관련 표현은 ‘위축’에서 ‘큰 폭 감소’라는 단어로 격상됐다. 경상수지 적자가 고착화하면서 연간 전망치 260억 달러 달성도 불안한 상황이다. 그동안은 4월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해도 일시적이라 경제 펀더멘털 약화로 해석될 여지가 작았지만 이번에는 대외 신인도 불안, 외환·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수출 부진으로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가 동반 적자를 보이는데 4월 본원소득수지까지 가세해 달러 유출 압력이 커질 수 있다”며 “외국인의 주식 매수세도 약화돼 수급 부담 역시 있다”고 우려했다.
주요 기관마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잡기 바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원화 약세 요인이다. 더구나 지금은 한미 금리 역전 폭이 1.50%포인트로 역대 최대로 벌어진 만큼 외부 충격에 약한 상태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최근의 원화 약세는 한국 수출 경기 전망 악화에 따른 펀더멘털 우려 때문”이라며 “원화에 대한 수요 부진이 추가 환율 상승을 견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