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대만을 사방으로 포위하는 형태의 고강도 군사 훈련에 돌입하면서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의 회동에 대응한 일종의 무력 시위다.
9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전날 오전부터 사흘 동안 대만 해협과 대만섬 남북부, 대만 동부 해역과 상공에서 ‘날카로운 검 연합훈련(United Sharp Sword)’에 돌입했다. 중국군은 대만과 주변 해역에서 핵심 목표물에 대한 모의 정밀 타격 훈련을 했다.
중국 측의 군사훈련 개시 발표 이후 대만 국방부는 훈련 이틀째 오전까지 24시간 동안 대만 주변에서 중국 공군 항공기 71대와 해군 함정 9척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군용기 가운데 Su-30 전투기 8대와 J-11 전투기 4대, J-10 전투기 16대, J-16 전투기 10대 등 군용기 45대는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거나 대만 서남부 공역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대만 해협 중간선은 1955년 미국이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선언한 비공식 경계선이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은 이 선 너머로 군용기와 군함을 상시 파견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해상초계기 P-8A 포세이돈을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투입했다고 연합보 등 대만 언론이 이날 보도했다. 포세이돈 초계기가 대만 서남부 ADIZ를 선회 비행한 후 정오 이후에는 대만과 필리핀 사이에 위치한 바시해협에서 선회 비행했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중국의 무력시위는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실시했던 군사 훈련 당시의 강도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8월 당시 중국은 대만 주변 해역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전쟁 게임을 벌였지만 이번에는 비슷한 훈련을 발표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대만 국방부 측은 중국 로켓군의 활동을 감시하는 등 고도의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 군은 10일 대만 북부 신주현에서 126㎞ 거리에 있는 핑탄현 앞 대만해협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하면서 중국과 대만 사이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대만군은 각급 부대 지휘관의 영내 대기 발령을 냈다.
중국 군의 이번 고강도 군사 훈련은 차이 총통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매카시 하원의장과 회담한 데 대한 보복 성격이다. 대만을 담당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의 스이 대변인은 “대만 독립 분열 세력과 외부 세력의 유착과 도발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며 “국가 주권과 영토 완전성을 수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라며 훈련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앞서 차이 총통은 중미 과테말라와 벨리즈를 방문하면서 미국을 경유해 매카시 의장 등을 만나고 7일 귀국했다. 미국 측은 경유지를 방문하는 기존의 관행이라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경유는 변명일 뿐 실제로는 미국에 기대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국은 군사 훈련과 관련해 중국 측에 “과잉 대응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전날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소통 채널은 여전히 열려 있고 계속해서 자제와 현상 유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군사적 자신감도 내비쳤다. 대만의 미국대사관 격인 미국재대만협회(AIT)는 이날 “미국은 대만을 둘러싼 중국의 훈련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며 “미국은 지역 내 평화와 안정성을 유지한 자원과 역량을 갖췄다고 자신한다”고 발표했다.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미국의 무역 당국 관계자들이 다음 주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CNBC는 전날 미 상무부의 엘리자베스 이코노미 중국 문제 선임고문과 스콧 태틀록 중국·몽골 부차관보가 다음 주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연말 방중을 추진할 경우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목적의 방중이라고 매체는 보도했다.
중국 역시 경제 회복을 위해 무력 시위 형태를 조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만 국방안전연구원(INDSR)의 쑤쯔윈 연구원은 중국이 항모 훈련과 실탄 훈련 위치를 달리하는 등 병력과 화력을 분리한 점 등을 들어 “주권을 과시하는 동시에 국제적 민감한 반응을 낮춰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 해군은 전날 중동 지역의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유도미사일 원자력잠수함 ‘USS 플로리다’를 파견했다고 밝히면서 미국과 이란을 중심으로 한 중동 내 군사적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모하마드 마란디 이란 핵협상팀 고문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미군의 미사일이 한 발이라도 이란에 떨어진다면 중동에서 미군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