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 모르는 택시…"손님 골라 태우기 감소" vs "길거리 호객행위 부추길 것"

◆택시앱 목적지 미표시 법안 논란
운수사업법 개정안 입법화 수순
적용 범위 무료호출까지 확대 논의
택시 4개 단체 "국민 편의 증진해야"
플랫폼 업계 "승차거부 해결책 안돼"
거리 배회영업에 승객 불편 커지고
기사 자율성 저해 등 부작용 지적

서울 강남역 인근 임시 승차대에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 가맹 택시 기사가 승객이 타기 전까지 목적지를 알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논의를 거쳐 입법화 수순을 밟으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기사가 호출을 받을 때 승객의 목적지를 알 수 없도록 해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승객을 거부하는 ‘골라잡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지만 택시 기사의 승객 취사선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타다금지법’에 이어 모빌리티 업계를 옭아매는 규제가 더해져 플랫폼 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1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 플랫폼 중개 사업자 등의 목적지 미표시를 골자로 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상정될 예정이다. 의무화 자체에 반대하는 의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법안심사소위에서는 법 적용 범위를 유료 호출에 한정한 현행 국토교통부 안을 무료 호출까지 넓힐지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 재가를 받는 등 최종 관문을 통과하면 플랫폼 택시 기사는 승객이 탑승하기 전에 목적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동안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는 목적지 표시 여부를 자율적으로 정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T 가맹택시(블루)와 일반 부스터 호출 등에 목적지를 미표시하고 있다. 호출 중개하는 일반 택시의 경우 목적지가 표시된다. 우티도 가맹 택시의 경우 표시하지 않고 있지만 중개하는 일반 택시의 경우 표시하고 있다.


국회는 승차 거부를 해결하기 위해 목적지 표시를 금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택시 기사들이 승객의 목적지를 보고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는 단거리 승객의 호출은 받지 않고 장거리 승객만 골라 태우는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승객 골라 태우기를 조장하는 목적지 표시와 먼 거리의 택시가 배차되도록 호출(콜)을 몰아주는 등의 플랫폼 운영으로 택시 이용 승객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나 이를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발의 배경을 밝혔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관련 4개 단체도 “법안을 통해 국민의 편의를 증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도 목적지 미표시 의무화에 동의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와 택시 단체가 찬성하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서 있다. 연합뉴스

반면 법안이 통과되면 승객과 기사 모두의 이익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목적지 표시 금지가 승객 골라 태우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목적지 표시를 금지하더라도 단거리 승객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없어 승차 거부 및 호출 골라잡기는 근절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히려 목적지가 불분명한 승객을 애플리케이션으로 태우기보다는 택시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배회 영업’이 성행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또 다른 한 업계 관계자는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목적지를 확인하는 일이 빈번했던 과거 풍경이 재연될 것”이라면서 “택시 잡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심야 택시난 당시 기사들이 목적지 미표시 방식으로 호출에 응하고도 승객에게 전화를 걸어 도착지를 확인한 뒤 취소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택시 기사의 취사선택을 방지하는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법률의 기본 원칙인 입법 방법의 적정성에 위배된다”며 “일반 택시 기사가 승객 탑승 전 목적지 고지 요청이 가능한 것과 비교할 때 입법의 평등 원칙을 훼손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해당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사의 근무 환경과 택시 운행 환경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운수 종사자가 교대나 식사 시 자신의 이동 계획을 세워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사업 구역을 벗어난 장소를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택시 기사가 차고지나 주거지 등 원하는 방향이 분명한 상황에서는 아예 승객 호출을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택시 활용의 비효율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목적지 미표시법이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플랫폼 기업들의 창의성·유연성을 저해해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택시비가 급격하게 인상되고 경기 침체로 가계의 구매력까지 떨어져 승객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목적지 표지 금지라는 악재까지 더해질 경우 플랫폼 기업의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주요 택시 플랫폼 기업 5곳의 월간 활성화 이용자 합계는 1162만 205명으로 전달 대비 24만 명 증가했지만 최근 1년간 가장 낮은 수치다.


국회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에는 목적지 미표시 법안과 함께 플랫폼 중개요금을 국토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하는 법을 ‘수리를 요하는 신고제’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 개정안’도 함께 상정된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플랫폼 비즈니스 시대를 맞아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은 기존 산업의 체질을 변화에 맞게 바꿔주는 것”이라면서 “독과점의 폐해를 막겠다면서 규제만 강화할 경우 시장에서 서비스 차별화를 시도할 여지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