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 올해 경기가 ‘상저하고(上低下高)’를 보일 것이라는 당초 전망도 틀릴 가능성이 점점 커지면서 재정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출범 이후 연이어 감세 드라이브를 걸던 윤석열 정부가 유류세·종합부동산세와 개별소비세 정상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배경에는 세수 펑크가 있다. 2월까지 세수진도율을 봤을 때 올 국세 수입은 정부의 예상보다 20조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재정 당국으로서는 세수 구멍은 일부 막고 지출은 줄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세금 감면을 통한 민간 주도 성장을 꾀한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지만 당장 세수 결손이 심각해 투트랙으로 재정 여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관가 등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몰되는 유류세·종부세·개소세 인하 연장을 두고 재정 당국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달 말 일몰되는 유류세 인하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는 다음 주 ‘단계적 폐지’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다.
현재 유류세는 휘발유의 경우 인하 폭이 25%, 경유는 37%에 이른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경유의 인하 폭을 낮춰 휘발유와 맞추거나 휘발유·경유 인하 폭을 15~20% 수준까지 일괄적으로 내리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류세 인하는 올해 3년째 시행되고 있는데 유류세 인하에 따른 세금(교통·에너지·환경세) 감소분은 지난해 한 해만 5조 5000억 원에 달했다. 올해 세입 예산도 유류세 인하 유지를 전제로 작성된 만큼 이 조치를 폐지하면 예산 대비 5조 원이 넘는 세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다.
종부세 정상화도 거론된다. 상반기 안에는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과세표준을 정할 때 공시가격에 곱하는 비율)을 결정해야 한다. 정부 안팎에서는 현재 60%로 역대 최저치까지 내려간 공정시장가액비율을 80%로 되돌리는 방안이 유력하다. 올해 세입예산이 가액비율 80%를 전제로 짜였다는 점도 이 같은 방안에 힘을 싣는다. 이 외에 승용차와 발전연료에 붙는 개소세 인하 조치도 상반기에 끝나는 만큼 6월까지 개소세 인하 폭을 조정하거나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세금 정상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그마나 경기 부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면서도 세수를 충당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유가의 경우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전격적인 감산 조치 발표에도 이란 등 제3의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늘려 국제유가는 80달러 선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리오프닝에도 주요국의 경기 침체로 당분간 유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자동차 역시 수출이 급증해 승용차 개소세 일몰에도 큰 부담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제유가 120달러에서 취한 유류세 인하를 80달러인 지금까지 이어갈 필요는 없다”면서 “공시지가가 떨어진 만큼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도 원래대로 돌려 세수 충당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혹독한 지출 구조 조정도 주문한다. 당장 쓸 돈이 궁한 이번 정부도 병사 월급 200만 원 대선 공약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야권 또한 선거를 앞두고 기본대출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국가채무는 지난 문재인 정부의 재정 중독으로 이미 1000조 원(지난해 말 기준 1067조 7000억 원)을 돌파한 상태다. 국가채무 급증으로 올해부터 4년간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만 100조 원에 육박하는 만큼 세출 구조 조정은 필수라는 지적이다.
특히 주요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로 1.1%를 제시하는 등 갈수록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당초 예상했던 상저하고는커녕 상저하저(上低下低)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 집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전직 국책연구원장은 “경기 후퇴기에 재정이 제구실을 못하면 경제의 성장 잠재력까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로서는 세수 구멍을 메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짚었다.
시장에서는 결국 정부가 세수를 낮춰 잡는 세입 경정과 세출 추경을 함께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건전재정 기조의 손상을 감수하고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직 국책연구원장은 “세수가 잘 걷히지 않는 만큼 재정지출 규모도 줄이는 게 맞다”며 “그래야 혹여 추경을 편성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그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