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만 유리한 'ETF 대차거래', 당국 눈치에 첫 가이드라인 제정

싼값에 주식 빌려줘 투자자 손해
지난해 ETF 정기검사 후속조치

서울 여의도 증권가. 연합뉴스


자산운용 업계가 상장지수펀드(ETF) 대차거래와 관련한 금융감독원의 문제 제기에 첫 자체 지침을 제정했다. 운용사가 증권사에만 유리하게끔 지나치게 싸게 ETF 주식을 빌려주면서 일반 투자자들의 이익을 몰래 해친다는 금감원의 지적에 부랴부랴 대응에 나선 것이다.


1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는 지난달 ‘펀드의 증권대차거래 업무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펀드의 주식 대차거래 목적·요율·한도 등에 대한 모범 규준을 마련한 것이 주요 골자다. 가이드라인은 펀드 운용사와 계열 증권사 간 이해 상충이 발생하지 않도록 투자자 이익을 우선하도록 규정했다.


예컨대 주식 대차거래 수수료율이 투자자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수준으로 변동할 경우 기존 대차거래의 조건을 조정하는 식이다. 주식 대여의 한도는 펀드가 보유한 증권 총액의 50%를 넘지 못하도록 했고 주식 차입은 펀드 자산 총액의 20%로 제한했다. 대차거래의 목적도 △펀드 수익률 증진 △ETF 매매 편의성 증대 △펀드의 효율적 운용 등의 조건을 하나는 꼭 포함하도록 했다.


금투협이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은 지난해 금감원의 ETF 정기 검사에 따른 후속 조치다. 금감원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최근까지 정기 검사를 통해 ETF 대차거래 과정에서 운용사와 계열 증권사(LP) 간 이해가 상충하는 문제를 집중 조사했다. 금감원은 일부 ETF 운용사가 증권사에 지나치게 낮은 수수료로 주식을 대량 대여하면서 이익을 보게 했다고 봤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피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운용사는 이 같은 문제로 과태료를 부과 받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금감원이 조사 과정에서 내놓은 구두 지적 사항들이 그대로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금투협 관계자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전 운용사들, 금감원과 먼저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ETF 대차거래를 둘러싼 논란은 유동성 공급자(LP) 역할을 하는 증권사와 운용사 간 특수관계에서 비롯됐다. LP는 주식을 빌려 ETF 운용사에 납입하고, 운용사에서 ETF를 받아 시장에 파는 역할을 한다. 유동성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매매량이 적은 ETF에 투자한 개인들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운용 업계 일각에서는 낮은 대차 요율은 ETF 거래 비용을 낮추는 데 필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비싼 요율로 빌려주면 LP들이 호가를 벌릴 수밖에 없다”며 “수수료를 높이는 것보다 유동성 공급으로 투자자가 얻는 편익이 더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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