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 변호사의 아들과 같이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2년간 학교생활기록부에 보존해야 할 기록을 졸업 직전 삭제하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직전 열리는 학내 학교폭력 전담 기구 심의 대상에 오르기만 하면 10건 중 8건은 기록이 삭제된 것으로 집계됐다. 심의가 피해자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요식행위처럼 이뤄지고 있는 데다 학생부에 2년간 학폭 기록을 보존하도록 한 조치 역시 무력화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서울경제신문이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2020~2022년 ‘학교폭력 가해 학생 조치 사항(4·5·6·8호) 삭제를 위한 전담 기구 심의 및 삭제 건수(일부 학교 미제출)’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전체 심의 건수 대비 삭제 비율은 78.2%였다. 총 2만 9003건이 심의 대상에 올라 2만 2683건이 삭제됐다.
구체적으로는 강원교육청(91.6%)과 전남교육청(91.6%) 등을 포함한 13개 교육청의 학폭 기록 삭제 비율이 평균을 웃돌았다. 충북(78.7%)을 제외하면 모두 80%를 상회했다. 가장 삭제 비율이 낮은 경남(32%)을 비롯해 제주(46.8%), 충남(59.3%), 부산(59.5%) 등 4곳은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4호(사회봉사 활동), 5호(특별 교육), 6호(학교 출석 정지), 8호(학교 전학) 조치는 졸업 후 2년간 학생부에 보존된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할 경우 졸업 직전 교내 전담 기구 심의를 거쳐 졸업과 동시에 학폭 기록 삭제가 가능했다. 요건은 ‘다른 사안으로 가해 학생 조치를 받지 않은 경우’와 ‘4·5·6·8호 조치가 조치 결정일로부터 졸업학년도 2월 말일까지 6개월이 경과된 경우’다.
학폭 기록의 학생부 삭제가 엄격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 올해부터는 8호 조치는 심의를 통해 삭제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 4·5·6호를 비롯해 7호(학급 교체) 조치 기록은 졸업 후 2년까지 학생부에 보존돼야 함에도 심의를 통해 졸업과 동시에 삭제할 수 있다.
문제는 삭제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 ‘2년간 보존’ 조치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담 기구는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와 재발 사례 등을 고려해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데, 심의 대상에 오르기만 하면 대부분 삭제를 해주고 있어서다. 정 변호사의 아들 역시 졸업 직전 일사천리로 학폭 기록을 삭제해 논란이 됐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심의에서 삭제하지 않으면 학교가 학부모 민원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심의 과정에서 피해 학생의 입장이나 피해 학생과의 화해 여부가 고려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기록이 삭제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12일 발표할 학폭 근절 대책에 학생부 보존 기간 연장 등의 방안이 담길 예정인 가운데 심의를 통한 삭제 절차 강화 방안도 포함될지 관심이 쏠린다.
김승혜 유스메이트 아동청소년문제연구소 대표는 “대다수는 가해 학생이 반성했을 거라고 가정하고 세심하게 확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심의 과정에서 피해 학생의 보호와 회복 등이 더욱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병욱 의원 역시 “학폭 기록 보존 기간을 늘리는 조치와 함께 학폭 기록에 대한 삭제 심의도 현행보다 더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