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2030년까지 국내 전기자동차 생산 능력을 지금의 5배로 높여 우리나라를 글로벌 미래차 3강으로 도약시키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 24조 원을 투자해 전기차의 패권을 쥐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기도 화성시 기아(000270)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현대차(005380)그룹이 세계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도 원팀으로 뛰겠다”고 말했다. 기공식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송호성 기아 사장, 현대차·기아와 부품사 임직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기아의 전기차 전용 공장은 현대차그룹이 1994년 현대차 아산 공장을 기공한 지 29년 만에 국내에 건설하는 완성차 제조 공장이다. 국내 최초로 신설하는 전기차 전용 공장이자 세계 최초의 목적기반차량(PBV) 전용 생산 시설이기도 하다. PBV는 전자상거래·물류·셔틀 등 다양한 상업 목적으로 사용되는 차를 뜻한다.
현대차그룹은 오토랜드 화성 내 약 9만 9000㎡(3만 평) 부지에 1조 원을 투자해 전용 공장을 세우고 2025년 하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한다. 연간 최대 15만 대 수준의 생산 능력을 확보한 뒤 이를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기아는 신설 공장에서 고객 맞춤형 전기차를 전용 생산한다. 2025년 선보일 중형급 PBV가 첫 양산 제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 24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국내 전기차 생태계를 고도화하고 글로벌 미래차 산업 혁신을 선도할 허브 역할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연간 생산량을 151만 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생산량의 60%인 92만 대는 수출한다.
동시에 2030년 글로벌 전기차 생산 목표를 364만 대로 설정하며 전기차 글로벌 판매량 3위권에 진입하겠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국내 전기차 연구개발·생산·인프라 등 전후방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자동차 산업의 변화와 혁신을 선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기아 화성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과 함께 국내 전기차 분야에 24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힌 것은 전동화라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격변기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현대차그룹이 21조 원이었던 기존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2030년 연간 전기차 생산 목표량을 상향 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이 이날 기공식에 참석한 기아 화성 전기차 전용 공장은 “전기차 퍼스트 무버”를 강조한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2025년 하반기부터 연간 15만 대 규모의 고객 맞춤형 전기차를 양산할 이곳에는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축적해온 최첨단 공정기술이 총집결한다. 미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전기차 전용 신공장(HMGMA)에 적용한 공정 기술들이 화성 공장에도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차량의 도장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와 유해 물질을 저감하는 건식 부스를 운영해 탄소 배출량을 기존 공장 대비 약 20% 줄인 저탄소·친환경 공장으로 지어진다. 머신러닝과 인공지능(AI) 기술도 적용된다.
송 사장은 “2025년 하반기부터 PBV라인업의 최초 모델인 중형급 ‘SW(프로젝트명)’가 양산될 것”이라며 “일반 물류, 신선식품 배송, 다인승 셔틀, 이동식 오피스와 스토어로 활용이 가능한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을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 3위 진입’이라는 목표도 처음으로 제시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초로 도요타·폭스바겐에 이어 글로벌 완성차 판매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기세를 전기차 분야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해 2030년 전기차 생산량 목표치도 올려잡았다. 현대차그룹 2030년 글로벌 전기차 생산량을 기존 323만 대에서 364만 대로 12.7%, 내수 생산량은 144만 대에 151만 대로 4.8% 각각 상향 조정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산업 고도화를 위해 국내 투자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지만 국내에서 탄탄한 전기차 제조 기반이 갖춰져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해 국내 전기차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기존 공장의 전기차 전용 라인 전환 등을 추진한다. 내년부터 기아 광명공장 생산라인이 전기차 전용 라인으로 순차 전환되고 현대차 울산공장 주행시험장 부지에도 전기차 전용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에서 구축하는 전기차 생산 공장 내 산업용 로봇 등은 국산 지능형 로봇으로 설치돼 설비 국산화율이 99%에 이른다. 공장 설비의 대부분이 국내 기업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전기차 전용 라인 확대는 국내 경제와 국가 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의 뒤를 이를 차세대 승용 전기차 전용 플랫폼도 개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전기차 제품 라인업을 2030년까지 31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전기차 성능의 핵심인 배터리와 모터 등 파워일렉트릭(PE) 시스템 고도화, 1회 충전 주행거리(AER) 증대 기술 개발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통합 상품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정부도 현대차의 이런 노력에 화답했다. 윤 대통령은 “현대차그룹이 세계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도 원팀으로 뛰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전기차와 같은 첨단산업 분야의 민간투자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정부가 입지, 연구개발(R&D), 인력, 세제 지원 등을 빈틈없이 하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정부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자동차 생태계를 미래차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수립해 올해 상반기 중 발표할 계획이다. 이 대책에는 국내 전기차 시설 투자 등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유럽연합(EU) 등이 법안을 통해 자국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면서 “우리 기업과 정부가 원팀이 돼 전기차 생태계 조성에 함께 뛰면 글로벌 전기차 경쟁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