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트로이목마' 찍힌 中 크레인…국내 항만시장서 퇴출

[中 크레인 퇴출]
◆ 항만크레인 국산화 급물살
보안 취약 중국산 과점에 위기감
광양항, 국산제품 43대 도입 등
신규 발주 물량부터 중국업체 배제
"中 경쟁력 높아" 퇴출 난항 지적도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전화중공업(ZPMC)의 항만 크레인. ZPMC 홈페이지 캡처

미국이 잠재적 ‘스파이 장비’로 지목한 중국산 항만 크레인이 국내 시장에서 퇴출 수순을 밟는다. 항만공사들이 잇따라 신규 크레인을 국내 기업에만 발주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국내 항만 시장을 잠식한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보안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13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인천항만공사는 최근 항만 운영사 선정 시 국산 크레인 도입 계획이 있는 업체를 우대하기로 결정했다. 운영사 선정 과정에서 국산 크레인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신청 기업에 가점을 주는 방식이다. 인천항만공사는 올 상반기 내 모집할 입주 기업부터 이 같은 방침을 적용하게 된다. 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통상 항만 운영사 선정에는 복수 업체가 신청해 미세한 점수 차로 당락이 결정된다”며 “가점을 통해 충분히 국산 크레인 도입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항만공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부산항만공사는 올 하반기 준공 예정인 2-5단계 컨테이너 부두에 설치할 항만 크레인 전량을 국내 업체에서 도입하기로 했다. 당초 부산항만공사는 2-5단계 부두 구축 과정에서 내부 문서에 ‘국산 크레인을 도입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사 측은 2026년 준공 목표인 2-6단계 부두 역시 크레인 전량을 국내 기업에 발주할 계획이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항만은 국가 기간 시설인 만큼 외산 장비 과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2-6단계 부두도 (2-5단계 부두와) 동일한 기조로 크레인 발주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만공사들이 신규 크레인을 국산품으로 제한하려는 것은 보안 우려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자국 항구의 중국산 크레인이 첨단 센서로 군수물자 운송 정보 등 군사기밀을 수집한다며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특히 미국이 우려하는 업체는 자국 항만 크레인 시장의 80%를 차지한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전화중공업(ZPMC)이다. 국내 항만 크레인 877기 중 48.7%(427기)도 ZPMC 제품이다.


우리 정부도 국가정보원을 중심으로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으며 결과는 이르면 올 상반기에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후속 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항만公 '국산화 방침' 속속 도입

국내 항만공사들이 잇따라 국산 크레인 도입 방침을 세운 것은 중국산 크레인 과점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항만 크레인 876기 중 54.6%(478기)는 중국산으로 집계됐다. 중국 크레인 업체들이 2000년대 초반 국내 시장에 진출한 후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확대해온 결과다.


이 중 중국 국영기업인 상화이전화중공업(ZPMC) 제품만 427기로 두산에너빌리티·현대중공업 등 국내 기업이 생산한 크레인(389기)을 모두 합친 것보다 38기 더 많았다. 국내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에 설치된 ZPMC 크레인은 298기로 전체 크레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5%가 넘었다. 주한 미군이 군수물자를 들여오는 평택·당진항에도 ZPMC 크레인 21기가 설치돼 있다. ZPMC는 빌 에바니나 전 미국 국가방첩안보센터(NCSC) 소장이 최근 “제2의 화웨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업체다.


다만 국내 항만공사들의 새 방침에 따라 중국산 크레인의 비중은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항만공사는 향후 신축할 부두에 설치할 항만 크레인을 모두 국내 기업에 발주할 방침이다. 여수광양항만공사도 올 하반기 착공 예정인 광양항 자동화 항만에 들어갈 안벽크레인(QC) 11대와 트랜스퍼크레인(TC) 32대를 국내 업체를 통해 도입하기로 했다. 항만 업계 관계자는 “항만공사는 지난해부터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국제입찰 의무 대상이 아니다”라며 “경쟁입찰 공고 시 국내 기업으로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산 크레인을 도입하면 부품 수급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부산항의 경우 2020년 크레인 붕괴 사고 당시 ZPMC 기술진 입국이 지연돼 복구 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국내 기업이 항만 크레인을 공급하면 해외 부품과 기술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유지·보수 작업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의 항만 기술 국산화 정책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해수부는 올 1월 스마트항만 기술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2031년까지 국내 기업의 글로벌 스마트항만 시장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노후화된 항만 크레인 교체 수요가 국내 기업에 집중되면 매출 증대와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도 늘어나 기술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해수부는 지난해부터 2031년까지 10년 동안 국내 항만 크레인 수요가 2조 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연내 기존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조치도 나온다.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중국산 크레인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후속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미국에서는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보안 우려가 제기된 후 터미널운영시스템(TOS) 등 SW를 비롯해 크레인 자체를 교체한 사례도 있다.




"中에 꼬투리 잡힐라" 우려도

일각에서는 중국산 크레인 퇴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ZPMC 등 중국 크레인 업체가 탄탄한 내수 수요를 등에 업고 가격 경쟁력은 물론 기술 경쟁력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기업은 2000년대부터 중국 굴기에 밀려 모터 등 크레인 주요 부품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국산 크레인을 도입해도 정작 핵심 부품은 외산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중국의 반발 가능성도 문제다. 당초 중국 정부는 미국이 중국산 크레인을 잠재적 스파이 도구로 지목하자 “피해망상적 시도”라며 반발한 바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에 반발할 빌미를 주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전수조사를 통해 (중국산 크레인이)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입증되면 중국도 반대할 명분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도 “미국이 최근 제정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는 자국 항만 장비에 보조금을 주는 조항도 담겼다”며 “항만공사에 국제입찰 의무가 없는 만큼 통상 규범상 문제될 사안은 없다”고 했다.


“中 크레인, 제2의 화웨이 될 수도”

“(중국산) 크레인은 제2의 화웨이가 될 수 있다”


빌 에바니나 전 미국 국가방첩안보센터(NCSC) 소장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중국 크레인 업체가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 핵심 타겟인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에바니나 소장은 인터뷰에서 항만 크레인을 “비밀정보 수집을 감출 수 있는 합법적 사업”으로 묘사했다. 중국 기업이 크레인에 달린 첨단센서로 화물 운송 정보를 수집·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미 정부는 2021년 기밀평가에서 중국이 항만 크레인을 통해 군사장비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 크레인 업체 중 도마에 오른 곳은 상하이전화중공업(ZPMC)이다. ZPMC가 미국 내 항만 크레인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ZPMC는 중국 국영기업 중국교통건설(CCCC) 자회사다. CCCC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역점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핵심 축을 맡고 있다. ZPMC 측은 2017년 인터뷰를 통해 중국 상하이 본사에서 자사 크레인을 모두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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