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 비율에 대한 가치 산정을 어떻게 하는지가 앞으로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배터리 기업이 원자재·소재를 공급 받는 해외 협력 업체의 세세한 조달선까지도 모두 점검해야 합니다.”
14일 한국배터리산업협회와 김앤장법률사무소가 주최하고 서울경제신문이 후원한 ‘미 IRA 활용 전략과 기술 수출 관련 설명회’에서 연사로 나선 전문가들은 핵심 광물 부가가치 산정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터리 생산과 관련한 모든 광물의 공급망을 낱낱이 파헤쳐야만 미국이 요구하는 핵심 광물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설명회에 참석한 배터리 기업 현업 직원들도 이 문제에 특히 큰 관심을 드러냈다.
당장 배터리 업계는 미국이 IRA 세부 지침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부 지침에 따르면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리튬·니켈·코발트 등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을 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해도 한국에서 가공해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관건은 부가가치 산정 방식이다. 보통 광물을 완성하기까지 채굴·추출·제련·가공 등 여러 공정을 거치는데 각 과정에서 수반되는 가치가 어떻게 책정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소연 김앤장 변호사는 “양극재나 음극재가 핵심 광물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데 그 안에 들어가는 여러 광물의 부가가치를 어떻게 세분해서 따질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신정훈 김앤장 변호사도 “광물이 여러 국가를 거쳐 완성될 경우 해외에서 수입한 원재료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부가가치 산정이 크게 달라지는 등 불확실성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에서 리튬을 채굴하고 한국으로 들여와 수산화리튬으로 가공할 경우 아르헨티나의 리튬 가치가 낮게 산정돼야 핵심 광물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문제는 전체 밸류체인의 정점에 있는 배터리 회사가 모든 공급망을 살필 여력이 되느냐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배터리 제조사는 각기 다른 핵심 광물의 추출·가공·재활용 등 일련의 조달망을 확인해야 하지만 해외 수입 업체들로부터 모든 조달 과정을 세세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등 ‘해외우려단체(FEOC)’로부터 공급망을 벗어나는 것도 한국 배터리 업계의 과제다. 아직 IRA상 FEOC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지만 다른 법에서 적용된 사례를 보면 매우 엄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 변호사는 “미국 반도체지원법을 보면 중국이 25%의 직·간접적 의결권만 갖고 있더라도 해당 기업은 FEOC로 분류된다”면서 “이 법을 준해 IRA의 FEOC 세부 지침이 만들어질 경우 국내 기업들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 태양광 제품에 대한 수입 규제를 시행하면서 신장산 폴리실리콘이 0.01g이라도 들어 있으면 수입을 중단할 정도로 FEOC 제도를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IRA에 따른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폐배터리 재활용이 제시됐다. 신 변호사는 “핵심 광물 부가가치의 50% 이상이 북미 지역에서 재활용된 경우에도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면서 “다른 나라가 선점하기 전에 재활용 산업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생산에 인센티브를 주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제도(45X)가 북미 진출의 발판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박 변호사는 “기존 풍력과 태양광 분야에도 세액공제 혜택이 있었지만 남은 텍스 크레딧은 이월해야 했기에 현금 가치가 떨어졌으나 배터리 산업의 경우 현금 환급이 가능해 미국에 들어온 글로벌 배터리 업체에 대한 인센티브를 크게 강화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