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병사 봉급 200만 원, 그게 그리 급한가

◆권구찬 선임기자
순증 예산, 스텔스 전투기 20대분
초급 간부 박탈감에 군 수습 진땀
文정부 최저임금 인상쇼크 잊었나
공약완수보다 자원 전략배분 중요

권구찬 선임기자

정부가 지난달 말 예산편성 지침을 각 부처에 내려보내면서 내년도 예산 전쟁이 시작됐다. 올가을 정기국회 때 입법·행정부의 예산 전쟁이 최종전이라면 이제 1라운드의 막이 오른 셈이다.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각 부처와 빠듯한 나라 살림에 칼질하려는 예산 당국의 샅바 싸움은 관가의 오래된 풍속도다.


한데 예산 당국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뭉텅이 예산이 더러 있다. 기초연금처럼 법률에 근거해 해마다 꼬박꼬박 배정해야 하는 의무지출이 대표적이지만 그 외에 ‘경직성’ 재량지출 항목도 있다. 주로 대통령 공약을 정책에 반영한 예산이 그에 해당한다. 논란의 중심에는 병사 월급 인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 줄짜리로 올린 바로 그 ‘병사 봉급 200만 원’ 공약이다.


인상 로드맵은 이미 정해져 올해부터 작동됐다. 병장 월급은 올해 130만 원(적금 지원금 포함)으로 59% 인상된 데 이어 내년 165만 원, 후년 205만 원으로 각각 오른다. 2022년 82만 원이던 병장 월급이 3년 동안 2.5배나 오르는 셈이다. 아르바이트 뛰기보다 군대 가는 게 낫다는 빈정 투의 환호성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최저임금보다 많다. 국가가 부담해야 할 지출액은 2022년 2조 4000억 원에서 해마다 1조 원 이상 늘어나 윤석열표 로드맵 최종 연도인 2025년에는 5조 7000억 원에 이른다. 순증 예산액은 군이 얼마 전 확정한 스텔기전투기 F-35A 20대 구입 비용과 맞먹는다.


정책 방향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인생 최대 황금기에 국방의무를 짊어져야 하는 청년의 헌신 대가로 월 205만 원 지급이 결코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책 방향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병사 월급의 급격한 인상이 초래한 역풍과 부작용은 현재 진행형이다. 임관 5년 이하 부사관과 장교 같은 초급 간부들의 불만과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죽하면 군 소식 알림 SNS인 ‘육대전’에 하사1호봉 부사관이 170만 원 수준의 월급 명세서까지 공개했겠는가. 병장 월급을 하사1호봉의 40%로 올리겠다는 게 5년 전이었으니 지금 부사관의 심정은 익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런 혼란의 뒷수습을 오롯이 군 당국이 떠맡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잇따르는 와중에도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여러 차례 초급 간부 간담회를 갖고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전군지휘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내놓은 장관의 일성도 각종 수당의 큰 폭 인상이었지만 건전재정의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예산 당국이 얼마나 귀담아들을지 모르겠다.


군은 장기적으로 인구절벽에 대처하기 위해 의무복무하는 병사보다 장기 복무하는 부사관·장교 위주로 병력 구조를 전환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모병제를 도입하기 위한 전 단계라면 또 모를까 병사 월급 인상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무엇보다 간부 중심의 미래 군 개편 방향과 충돌하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초급 간부를 제때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볼멘소리가 군 내부에서 나온다. 인건비 같은 경직성 전력 운영비를 한 번 올려놓으면 줄이지도 못해 대북 억제력을 키울 무기 체계 획득 여력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사회적 이슈와 문제가 발생할 때 무턱대고 세금으로 막는 정책은 하책이다. 세수가 펑크 나는 마당에 다른 예산도 아닌 인건비를 조 단위로 증액하는 것은 현 정부가 그토록 내세우는 건전재정 기조와 상충되기도 하다.


병사 예산이 총선 정국과 맞물려 어물쩍 반영되면 돌이킬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최저임금 쇼크를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2년 누적 30% 인상에 애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유탄을 맞더니 급기야 고용 쇼크로 이어졌다. 지금이 딱 그 짝이다. 공약 완수보다 중요한 게 자원의 전략적 배분이다. 이제 와서 판을 완전히 뒤집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속도 조절이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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