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외국계 기업인의 토로, 그 이후 15년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총괄전무




“회사에 도움이 되는 활동은 얼마든지 노조 활동 시간을 보장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급단체의 지침에 따라 회사 외부 활동에 열심인 노조 전임자에게까지 임금을 주는 건 회의감이 듭니다.”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치열했던 2008년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원칙의 문제 아닌가”라며 이렇게 토로했다.


노조전임자는 말 그대로 회사의 근로자지만 회사 업무는 하지 않고 노조 업무만 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회사가 일을 전혀 하지 않는데도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노조는 단체교섭 때마다 노조전임자의 확대를 요구했고 노사 간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잘못된 관행과 부당한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1997년 노조전임자에게 급여 지급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13년간의 유예 끝에 2010년 시행됐다. 다만 관련 규정의 시행과 함께 노조 간부 등이 일정 한도 내에서 근로시간 중에 임금의 손실 없이 노사 공통의 이해가 걸린 조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면제제도를 도입했다.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이 시행되면 재정이 열악한 중소 규모의 노조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근로시간면제제도는 산업 현장에 잘 안착됐을까. 안타깝게도 애초의 취지와 달리 산업 현장에서는 대규모 노조가 과거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근로시간 면제자의 노조 활동 시간은 노사가 정한 한도의 21~24%에 불과했다. 근로가 면제되는 시간의 5분의 1 정도만 노사협의나 단체교섭, 고충 처리, 산업 안전 활동 등에 사용한 것이다.


15년 전 외국계 기업의 관계자가 토로한 회의감을 지금의 경영자가 똑같이 느끼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경영자가 회사 일을 하지 않는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근로자가 일하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투쟁을 준비하거나 회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상급단체의 집회나 다른 회사 파업 현장에 참여하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외국은 어떨까.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는 필요 최소한의 근로시간만 면제하고 초기업단위 노조에서는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는 원칙적으로 노조가 부담하고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보상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근로시간면제가 노조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많은 노조에서 실제 필요한 시간을 훨씬 넘는 수준으로 무리하게 요구하는 실정이다.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위해서도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조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외적으로 근로시간면제를 인정하더라도 제도의 취지에 맞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노조 활동 시간만을 면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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