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의 요람'인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명성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코로나19 시기 활성화한 재택근무로 도심이 공동화되면서 기업들이 잇따라 사무실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치안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현지시간) 안전 문제를 이유로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0년 텍사스 오스틴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벤처캐피털 8VC의 조 론스데일 대표는 "샌프란시스코를 가족을 부양할 만한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자기업 펠리시스 벤처스의 아이딘 센쿠트 대표도 샌프란시스코 금융가에서 보다 한적한 프레시디오 지역으로 사무실을 이사한 데 대해 "도심의 안전성이 예전보다 훨씬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명 투자자인 제이슨 칼라카니스는 "과거에는 샌프란시스코를 스타트업의 최종 목적지로 보던 창업자들이 이제는 샌프란시스코를 피해 오스틴, 마이애미 같은 도시들로 향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 문제"라고 전했다.
물론 실제 통계를 보면 샌프란시스코의 치안이 눈에 띄게 나빠진 것은 아니다. FT는 "지난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55건의 살인이 벌어졌는데 이는 지난 10년간의 평균치와 비슷하다"며 "2013년에서 2021년 사이 전반적인 폭력 범죄도 감소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노숙자는 2019년보다 15% 감소한 4397명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기업과 시민들이 체감하는 범죄 두려움이 커졌다는 점이다. 테크 기업이 주로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는 코로나19 기간 활성화한 재택근무로 유동인구가 크게 줄었다. 근로자들이 미국에서 가장 비싼 임대료를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떠나 교외로 주거지를 옮겼기 때문이다. 시 교통 당국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교통 거점인 엠바카데로 역에 기차로 도착하는 승객 숫자는 2019년 이후 70%나 감소했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JLL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최근 공실률은 사상 최고인 30%로, 뉴욕 맨해튼(16%)의 약 2배에 달한다.
마약 문제 해결 시민단체인 투게더SF 측은 "통계만 보면 범죄가 늘었다는 것은 현실보다는 인식 수준에 가깝지만 대중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현실 그 자체"라며 팬데믹 기간 '펜타닐 위기'가 전국적으로 발생하며 도심의 마약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짚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필라델피아 거리에서는 펜타닐에 중독돼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져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밖에도 고급 슈퍼마켓 체인점인 홀푸드는 최근 매장 도난이 늘고 노동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며 시내 중심가의 주력 매장들을 폐쇄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방치되면 테크 허브로서 샌프란시스코의 명성이 빛바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심 공동화로 인해 범죄 두려움이 커지고, 이것이 기업들의 사무실 이전으로 이어져 공동화 현상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FT는 샌프란시스코의 임대료가 팬데믹 이전 대비 15%나 떨어졌다며 "샌프란시스코의 세수가 줄어들면서 시 당국이 (마약, 범죄 등의) 사회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