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신은 또다시 세계 최저치를 갈아치운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0.78명)에 주목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저출산으로 고민하지 않는 선진국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인구를 현상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합계출산율은 2.1명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이보다 출산율이 높은 국가는 이스라엘(2020년 기준 2.9명)뿐이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정부가 둘째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세금을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화제다. 일본은 저출산 정책을 총괄하는 ‘어린이가정청’을 이달 신설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1인당 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불문율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여성이 커리어를 위해 출산을 포기한다는 정설은 이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적어도 서방국가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 이후 1인당 소득과 여성의 노동 참여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도 높은 양상이 굳어지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산하 잡지 F&D는 이 같은 양상의 바탕에 ‘여성의 일·가정 양립 여부’라는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줄 역량이 있는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비교적 높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어떤 요소들이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느냐다. F&D는 적극적 가족 정책, 육아에 협력하는 아버지, 일·가정 양립에 우호적인 사회규범, 유연한 노동시장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꼽았다. 출산은 정책, 문화, 노동 구조가 모두 얽혀 있는 문제라는 뜻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육아휴직제도를 잘 갖췄다 해도 가정의 지지, 직장의 배려가 없다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고,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을수록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출산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F&D는 이 진단이 “쉽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서도 “출산율과 일·가정 양립 여부 간 명확한 연관성은 저출산이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도 아이가 없어 소멸하는 길을 걷고 싶지 않다면 정책, 사회규범, 노동 구조 전반을 아우르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