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30대 간호사 A씨는 수시로 낮밤이 바뀌는 교대 근무 탓에 수면 장애를 늘 달고 산다. 월경 주기가 깨지기 일쑤고 심지어 몇 달 생리를 거른 적도 있다. 불면증으로 30분도 못자고 출근한 날에는 잠을 깨기 위해 뺨을 때려 가며 환자를 돌본다.
보건복지부가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간호사 1명 당 환자 5명 간호’라는 목표를 세웠다. 방문 간호사의 독자 업무 범위도 확대한다. 간호법 제정안이 27일 국회를 통과될 경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미리 간호법 취지를 살린 정책을 발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복지부는 25일 이 같은 내용의 제2차 간호인력지원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2018년 발표된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 대책에 이은 후속이다. 지난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3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의 91.4%가 불안한 수면 상태를 호소하는 등 건강 상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 목표는 간호 인력 확대다.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를 5명 수준으로 줄임으로써 근로 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환자의 중증도가 높은 상급종합병원 간호사 1명이 환자 16.3명을 간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명 당 간호 환자를 3분의 1로 줄이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간호 인력을 대폭 늘리기 위해 간호인력 수급위원회를 구성해 입학 정원을 결정하기로 했다. 학위 취득까지 3년이 소요되는 간호대학 학사편입제도를 2년에 마칠 수 있는 간호학사 편입집중과정으로 재편해 연간 1000~2000명의 추가 간호 인력을 키우기로 했다.
확대 배출된 인력이 의료기관에 더 많이 배치될 수 있도록 수가도 개선한다. 6개 등급의 간호인력 확보 수준에 따라 기본진료료 중 입원료를 차등 지급하는 간호등급제 지원 수가를 올해 안에 개편키로 했다. 등급별 간호인력 기준을 높이고 등급간 재정지원 가산폭을 확대한다.
숙련 간호사 확보를 위한 총력전도 펼친다. 신입 간호사가 병원에 처음 근무할 때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1년 간 임상 교육·훈련을 받는 시스템을 만들고 교육전담간호사를 배치키로 했다. 교육전담간호사가 병원에서 환자를 간호하면서 간호대학 겸직교수로 강의할 수 있는 임상간호 교수제도 도입한다.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데이-이브닝-나이트'의 3교대 근무 방식 외에 △낮 또는 저녁 고정 근무 △낮과 저녁 또는 낮과 야간, 저녁과 야간시간대에 번갈아 근무 △12시간씩 2교대 근무 등을 선택할 수 있는 교대제 개선 시범사업을 제도화한다.
방문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는 의료법상 면허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조정키로 했다. 이미 올 들어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을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방문형 의료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1차 의료기관 등이 방문형 간호 통합제공센터를 개설해 함께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내년부터 3년 간 실시한다.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대책은 사실상의 간호법 중재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당정이 간호법의 간호사 업무 목적에서 뺀 ‘지역 사회’ 문구의 취지를 대책에 지역에서의 업무 범위 확대로 담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정부는 당초 다음 달 12일 국제간호사의 날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일정을 앞당겼다. 조규홍 장관은 브리핑에서 “우리나라는 70년 동안 의료법 단일체계를 유지해왔다”며 “간호법 별도 제정보다 현행 의료법 개정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논란이 되고 있는 진료보조(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할 계획이다. 해외처럼 별도의 교육을 받고 자격시험을 거쳐 직역 면허를 주는 식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PA 간호사가 엄연히 활동하고 있는 만큼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할 방침이다.